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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1952년에 제작돼 서부영화의 고전이 된 ‘하이 눈’(High Noon)에는 정의로운 보안관 이야기가 나온다. 그 보안관이 막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자신이 5년 전에 체포해 사형판결을 받게 했던 살인범이 사면돼 세 명의 부하들과 함께 복수를 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살인범이 탄 열차가 역에 도착하는 시각이 바로 정오이다. 그 젊은 보안관은 신혼여행도 포기한 채 그 범인과 싸우려고 보안관 배지를 다시 달고 동조자를 모집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외면했다. 다수의 주민들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기를 바라지 않았고, 보안관이 악당과 싸우면 마을에 피해가 나고 대외적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만을 생각해 보안관에게 포기하고 마을을 떠날 것을 요구한다. 결국 혼자서 악당들을 상대해 싸움을 끝내자 주민들은 그제야 거리로 몰려나온다. 지치고 환멸을 느낀 보안관은 배지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아내와 같이 마을을 떠난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사드배치 문제와 오버랩된다.

 이제 이 나라가 직면한 현실을 돌아보자. 어쩌면 이 나라도 ‘하이 눈’에서처럼 어느 정오에 북한과 정면 대결할 날이 올지 모른다. 김정은이 핵무기와 미사일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앞세우고 남쪽을 위협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과연 우리에게 이와 맞설 정의로운 보안관이 있는지?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대화를 제의할까? 그래서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평화유지란 이름으로 들어줄까? 혹 미국이 보안관을 자원해와도 이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므로 포기하고 떠나라고 하지 않을까? 주한미군을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방어무기인 사드배치를 ‘마을에 피해가 나고 대외적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이 군 트럭을 제지, 검문하도록 내버려두는 공권력과 민노총이 미 대사관을 포위해 사드반대 시위를 하도록 허가하는 행정법원이 있는 ‘환상적인 나라’가 이 나라이다.

사드배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으면 보안관이 마을을 떠나듯이 주한미군 철수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한미동맹은 깨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폐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미국이 한국을 버린 사태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882년 조선과 미국 간에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에 의해, 사실상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인 시오도우 루즈벨트는 미국에게는 조선을 지킬 전략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허용했다. 두 번째 경우는 대한민국 건국 후 1949년의 미군철수였고, 1950년 1월 국무장관 애치슨의 ‘미국의 극동방위선 선언’에서 한국을 배제시킨 행위이다. 미군철수 직전인 1949년 2월 28일에 작성된 미 CIA의 비밀보고서(최근 공개됨)에 의하면, "미군철수로 미국이 지원한 한국은 붕괴될 것이며, 이는 미국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뿐 아니라 극동에서의 미국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라고 비관적인 보고를 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CIA의 경고대로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도발을 감행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핵심 전략적 가치는 일본이며 한국은 일본을 중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요한 방위선이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주한미군의 주둔이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게 되면 미군철수는 힘을 얻게 된다. 한국이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있으므로 미군철수가 불가능하다는 일부의 주장은 자의적 해석일 뿐이다. 좌파정권의 논리 중, 자주외교, 자주국방, 전시작전권 환수와 같은 언어는 듣기에 환상적인 수사이고, ‘미국에 노(No)하는 것을 배우자’는 말은 주권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처럼 신선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무서운 대가를 초래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구상에서 미국을 제외한 어느 국가도 완전한 자주국방을 유지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에 각기 패권국가와 동맹을 맺는다. 그러므로 약소국은 자신의 힘을 기를 때까지 이길 수 있는 최강대국 편에 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번 한미정상 회담으로 환상의 나라가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기로에 서게 됐다. 우리는 월남의 패망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이 힘이 없어서 월맹의 통일을 허용했을까? 월남이 통일돼도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이 확신하였기 때문에 내버려 둔 것이라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보아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은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일본 모두 당사자가 됐기 때문에 공동해결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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