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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익 한국학술연구원 부원장
우리나라에서 ‘경제자유구역’과 같이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해 5대 정권을 걸쳐 오랫동안 장수하고 있는 정책도 드물 것이다. 현재 전국에는 모두 8개 경제자유구역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중앙 관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지방 단위에서도 ‘경제자유구역’이라는 용어를 점점 듣기 어려워지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경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 서자 취급을 받고 있지는 않는지 의구심마저 든다. 더욱이 지방에서는 단순한 지방정부의 형식적인 정책 장식품이거나 해당 단체장의 선거용 치적거리로 치부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경제자유구역 내 토지매각을 통한 지방부채 상환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시초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서 비롯됐다. 2002년 1월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구상이 발표되고 같은 해 11월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지역불균형론 또는 선부론(先富論)에 정책기조를 두고 경제자유구역을 통해 국가경쟁력 제고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애초부터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출발했다. 하나는 입법과정에서 당시 여당이 아닌 야당인 한나라당 주도로 추진했다는 점과 두 번째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이회창 후보가 아닌 지역균형론자인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이다. 대통령 선거 직후인 2003년 10월 인천을 필두로 2004년 부산·진해,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이 차례로 지정됐다. 입법에 따른 단순한 후속 조치로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내 주요 국정과제 어디에도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철학과 정책 기조 상 부조화와 갈등은 불가피했다. 행정기관의 세종시 이전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방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 황해, 새만금·군산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이 추가로 지정됐다. 대통령 선거 표를 의식한 공약의 실천으로 상당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당선이 도움이 된 새만금·군산 경제자유구역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당시 토목전문가이며 토지 이용 극대화를 주장하는 그는 인천의 해안 매립을 통한 경제자유구역 조성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인 2013년 충북(청주·충주), 동해안권(강릉·동해) 두 곳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추가로 지정했다. 이 역시 지역민심 달래기를 통한 선거 승리 전략으로서 극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 역시 전임 정권의 잔재인 경제자유구역 개발보다는 창조경제혁신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지난 5월 10일 문재인 정부가 새로이 출범했다. 정권 초기라 섣부른 예단은 조심스럽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 철학의 맥을 같이 하는 지역균형론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미래는 전임 정부와 같이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된다. 과거 여느 정부처럼 모른 척 등 돌려 누워 있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우리는 지난 13년 이상 2만 달러대 국민 소득에 갇혀 있는 ‘중진국의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자유구역 최초 지정 2003년 말 이후 13년과 그 기간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심각한 회의론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경제자유구역의 선심성 무분별한 기구 신설, 인력 증원, 예산 투자는 오히려 나라 경제의 악순환만 부추기고 국가경쟁력을 좀먹을 뿐이다.

 지난 5월 22일 새만금 ‘바다의날’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은 "새만금을 본인이 직접 챙기겠다"라고 선언했다. 새만금에는 고무적이나 다른 경제자유구역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차제에 전국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와 일몰제(Sunset Law) 도입 등을 통해 옥석을 가려 제대로 육성하든가, 아니면 유명무실해가는 경제자유구역제도 자체의 과감한 개선 또는 폐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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