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601010002212.jpg
세기의 대결이라 불렸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 이후 인공지능 로봇(A.I)은 낯설지 않은 용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로봇이 딱딱한 기계 외형을 벗고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즉 우리와 닮은 로봇이 출현해 근거리에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와 결혼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해외 토픽을 장식한다. 프랑스의 한 여성 과학자는 3D프린터로 직접 만든 로봇과 약혼 상태에 있으며, 가능하면 결혼도 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일본의 한 남성도 사오리라는 로봇과 사랑에 빠졌는데, 사오리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며 쇼핑과 산책 등 다양한 생활을 함께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동성 간의 결혼과 흑인과 백인 간 결혼이 금기시된 시절이 불과 50년 전의 과거임을 상기해 보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도 불가능한 공상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 ‘엑스 마키나’ 속 A.I는 지능형 로봇을 넘어 인간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심리적 밀당마저 가능한 정교한 기계이다.

 사실 SF영화에서 인공지능 로봇만큼 진부한 소재도 없다. 똑똑한 A.I의 등장으로 인간 생활이 윤택해지고, 때로는 지나치게 똑똑한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이 지배당하기도 하며, 로봇이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인간성마저 갖게 된 휴머노이드들의 정체성 혼란을 이야기하는 작품 등 SF장르에서 A.I는 특별하지 않은 소재가 됐다. 사실 ‘엑스 마키나’ 역시 기존 작품에서 이야기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여전히 이 작품은 ‘에이바’라는 여성형 로봇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증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튜링 테스트는 인간과 컴퓨터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인간이 대화의 상대방이 기계인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사고가 가능한지를 검사하는 시험이다. 영화 속 에이바는 한 발 더 나아간 튜링 테스트를 받게 된다. 프로그래머 칼렙은 대부분 기계의 육체를 가진 에이바와의 대면 대화를 통해 로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하나의 인격체로 느낄 수 있는지를 시험해야 한다. 테스트 기간 동안 에이바를 창조한 천재 과학자 네이든, 그가 창조한 아름다운 피조물 에이바, 에이바를 테스트하는 칼렙 간의 팽팽한 신경전과 심리게임이 튜링 테스트를 뜻밖의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영화 ‘엑스 마키나’는 라틴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e)’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계장치를 타고 온 신’이란 뜻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데우스(dues)가 생략돼 ‘기계장치로부터’라는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제한된 공간인 과학자 네이든의 연구소에서만 진행되며, 일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세 명의 제한된 등장인물 간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주목하는 독특한 SF 영화다.

 앞서 언급한 진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는 세련된 SF적 미장센과 사운드의 완성도 외에도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새로운 측면에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는 SF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기계의 섹슈얼리티와 사회적 성 역할인 젠더의 의미를 로봇영역에 확장해 흥미로운 담론을 제공하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