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우리나라 근현대 건축물의 메카다. 인천항이 개항된 1880년대부터 중구와 동구 일대에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들어선다.

 하지만 의미 있는 근현대 건축물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남은 건축물의 보존 방안 등도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본보는 지역의 근현대 건축물 실태를 살펴보고 향후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일제강점기 당시 대화조 사무소로 쓰였던 건물은 현재 카페 ‘팟알’이 운영되고 있다.
▲ 일제강점기 당시 대화조 사무소로 쓰였던 건물은 현재 카페 ‘팟알’이 운영되고 있다.
인천은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근현대 건축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인천항은 먼저 개항한 부산(1876년)이나 원산(1880년)보다 여러 외국의 선진 문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대한민국의 중심항이었다. 이 때문에 중구 일대에는 외국인의 거주 양식과 다양한 문화가 유입돼 당시까지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서구식 건축유형이 등장한다.

인천시립박물관이 2012년 학술조사 보고서로 발간한 ‘인천 근현대 도시유적’에 따르면 지역의 총 530개 도시유적 중 중구에 304개, 동구에는 142개가 밀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당시 조사 대상의 약 84%가 개항장과 맞닿은 중·동구에 몰려 있다. 시대별로는 개항기(1883~1909년)에 지어진 건물이 중구 49개, 동구 5개였으며 일제강점기(1910~1944년)에는 중구와 동구가 각각 137개와 37개, 광복 이후(1945~1960년)에는 81개와 70개로 조사됐다.

가장 최근에 중·동구 지역의 근현대 건축물 등을 조사한 사례는 인천문화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가 지역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한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다. 책에는 중구와 동구를 각 동별로 또는 조계지별로 구분해 골목 속에 숨겨진 근현대 건축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골목길 숨은 보물찾기’에는 중·동구 일대에만 100여 개의 근현대 건축물들이 조사돼 있다. 사례를 살펴보면 이미 전국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구청 옆 카페 ‘팟알’은 일제강점기 당시 대화조 사무소로 쓰인 건물이다. 대화조 사무소는 인천 일본 조계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정가 양식(마찌야) 건물로, 개항기부터 해방까지 인천항을 무대로 영업했던 하역회사의 사무소이자 주택으로 건축됐다.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등록문화재 567호로 지정됐다.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인천은 일본의 본격적인 대륙 침략으로 군수품 생산과 수송을 위한 군수공업단지로 성장한다. 군수공장이 늘어나면서 인구도 증가했고, 주택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공장은 사택을, 당시 인천부에서는 관영주택인 부평주택 등을 건설해 공급한다. 아직도 인천 지역 내 숭의동과 용현동, 송림동 등에는 당시 노동자들이 살았던 부영주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동양방직 사택(중구 북성동)을 비롯해 히로나카상공 사택(부평구 부평동), 경성화학주식회사 사택(남구 용현동) 등도 그 형태를 일부 유지하고 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부장은 "건축물은 그 시대에 왜 들어섰는가를 알게 해 주는 시금석"이라며 "후세에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 줄 수 있는 교육자원이자 관광자원이자 미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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