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의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손자병법의 대표적인 명구이다. 손자는 이를 통해야만 ‘매번 싸움에서 위태롭지 않다’는 백전불태(百戰不殆)를 얘기했다. 덧붙여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고,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쟁에서의 최선은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는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승리를 예측할 수 있는 다섯 가지의 예를 들었다. 첫째,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알면 승리한다. 둘째, 병력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다양한 용병술을 구사할 줄 알면 승리한다. 셋째, 군주에서 일선 병사에 이르기까지 위아래가 마음을 하나로 하면 승리한다. 넷째, 만반의 대비를 한 뒤 준비가 되지 않은 적과 싸우면 승리한다. 다섯째,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으로 미화됐고, ‘위태롭지 않다’에서 ‘승리한다’로 비약했다.

 그러나 상대방 역시 나에 대해 지피지기 단계에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세상에서 가장 강한 칼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방패’가 맞닥뜨리는 실로 ‘모순(矛盾)’의 형국으로 빠져 들게 됐다. 더욱이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에는 상대방 역시 얼마든지 합종연횡으로 변질될 수 있어 매 시기마다 상대방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이 불확실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전쟁터에서는 늘 세심한 정찰을 통해 적정의 변화를 면밀히 파악하는 정보가 필수적이 되었고, 적국의 의도를 다각도로 종합해서 정황을 추리하는 통찰력을 갖춰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상대방의 공격보다 상대방의 의도를 얼마만큼 파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등장은 한 세기를 훌쩍 넘었지만, 우리 역사는 주변 강대국의 기본적이고 대략적인 윤리만을 믿고 따르는 것을 ‘지피(知彼)’로 알았던 흔적이 역력했다. 각 시기마다의 위정자는 중국을 종주국으로 삼고 미국을 동반자로 하면서도, 친일(親日)과 친로(親露)의 세력으로 나눠지기도 했다. 개화에 실패한 무기력한 약소국의 전형이 됐던 것인데,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매번 싸울 때마다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는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고,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신무기 개발과 미사일 시험 발사, 핵무기 보유 등으로 한반도 정세는 불안감으로 뒤숭숭하다. 우리의 국방이 주변국들보다 우세하다고 할 수 없는 현실에서 미국의 지원 없이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실정인데, 거기에 중국의 경제제재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의 환율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국방이나 외교적으로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하겠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모양새이다.

 거기에다가 우리 내부의 사정도 그리 녹녹지가 않다. 최근 정부는 일자리 중심의 선순환 경제 생태계를 목표로 하여 경제의 역동성을 찾고 있다. 계층간 위화감의 팽배, 저출산 고령화 현상, 엄청난 가계부채, 소득의 불균형, 성장 잠재력 약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첫 단추가 일자리 창출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목표 설정이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며 또한 단시간에 완성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화되기까지에는 일정 기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피지기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항상 적용되는 생활의 지혜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지금까지 그것에 대한 처방이 어떠했기에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지 또 부작용은 무엇이었는지부터 규명해야 한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난세의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듯 우리가 처한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우리를 정확히 알 때만이 그 처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