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을 품고 있는 인천은 우리나라 근대건축물의 메카다. 하지만 보존 가치를 지닌 근대건축물들이 관련 기관 간 소통 부족과 무관심으로 방치되는 실정이다. 또 인천지역 내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면밀히 파악하거나, 가치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의 근거가 되는 기본계획도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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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본보는 ‘인천지역 근대건축물 보존 방안 모색 좌담회’를 열고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좌담회에는 손장원 재능대 교수, 김송원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이한구 인천시의회 의원,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컴팩스마트시티 부장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좌담회 주요 내용이다.

-인천의 근대건축물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배성수 부장= 근대건축물은 인천이라는 도시의 시대적 특성을 모두 보여주는 역사의 단면이자 교육 자원이다. 부평동의 삼릉사택, 숭의동의 부영주택 등 해당 건축물들이 왜 들어섰는가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알려주는 시금석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근대건축물은 관광 자원이자 미래 자산이 되기도 하다. 타 지역 사람들이 왜 인천을 방문하고자 하는지 깊게 고민한다면 답이 나온다. 처음 인천이 입소문이 난 것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이색적인 풍경의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근대건축물은 후세에게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교육 자원이자 관광 자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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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교수
▶손장원 교수= 인천에서도 과거 일본인들이 강점하기 유리했던 곳이 중구이기 때문에 이곳에 물류창고 등의 건물이 많이 있다. 이 자리에 창고를 많이 지은 것도 당시에는 이곳이 육지의 끝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건축물이다. 단지 오래됐다는 이유가 아니라 상징물로서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특히 인천의 경우 근대건축물은 흔히 ‘네거티브 문화’라고 하는 치욕의 유산이다.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시각화, 정의화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다듬어 예쁘게 만들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존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한구 의원= 인천의 근대건축물은 중구에 밀집돼있다. 일본 주택이 남아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일부는 재개발을 이유로 훼손돼 사라진 곳이 많다. 지역주택조합 모집 등이 진행 중이라 철거 위기에 놓인 곳도 있다. 일본 관청이나 조계지, 신흥동 등은 공장 근로자 또는 인근 기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의 주거지였다. 계층별로 다른 주거형태가 나타나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를 가진 근대건축물에 대해 인천시 등 지자체에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이 의원= 체계적으로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인천의 경우 근대건축물에 인공미가 있다. 다른 지역과 같이 해당 건축물의 원형, 또는 외관을 그대로 보존해 활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인위적으로 변형하고 주변과 맞추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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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송원 처장
▶김송원 처장= 인천에서는 근대건축물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현실이다. 특히 근대건축물을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구가 그렇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청일조계지 계단에 등대 조형물을 설치해 고발됐으며, 애경사 건물 역시 가치가 판단되지도 못한 채 철거됐다. 주민이나 시민단체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근대건축물 활용을 추진했다면 충분히 다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단체장의 역사적 인식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지역 내 근대건축물에 대한 전수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지자체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부족한 역사 인식으로 인해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결국 시와 시의회 등 민과 관이 함께 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배 부장= 이에 관해서는 세관창고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당시 세관창고 자리를 두고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비교적 빠르게 관련 협의체가 구성돼 이전 복원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완전하진 않았지만 이 사례를 시작으로 인천의 문화재 행정에 대해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대불호텔터도 마찬가지다. 당초 이곳에 상업 시설을 짓기 위한 터파기 과정에서 하부 구조가 발견되면서 공사가 바로 중단되고 문화재청에 신고해 현장 조사와 복원 명령이 이뤄졌다. 이 두 사례는 문화재 보존 및 활용과 관련해 관련 기관·단체 간 협의가 이뤄진 좋은 사례였는데, 이것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 의원= 계획적으로 지역의 근대건축물을 보존하면서 주민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면 재산권 침해에 대한 불만이나 문화재 보호 축소 등이 줄어들 수 있을텐데 이러한 인식 정착이 이뤄지지 못했다. 근대건축물을 보호해야만 주민 재산권 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을 행정이 확신을 갖도록 도와줬어야 하는데 이러한 의지가 부족했다.

-근대건축물 보존과 관련해 기관의 보존정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가.

▶손 교수= 거의 방치다. 의지도 없다. 송도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 문화재위원회에서 문화재로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는데도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사례를 찾아서 보존해야 한다고 알려줘도 안 되는데 아직 발굴되지 않은 것은 어떻겠는가. 문화재 복원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수조사는 절대 쉬운 절차가 아니다. 건물과 땅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뽑아내는 과정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노력, 예산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특히 전문가가 아니면 전수조사 등은 일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는 연구 환경 생태계 조성이 우선돼야 하는데 인천의 경우 대학을 통한 연구진 인력 양성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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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구 의원
▶이 의원= 담당 공무원들도 사업계획이나 전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는 일회적 용역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근대건축물에 대한 조사에서부터 보호·관리 방안, 로드맵 등 기본적인 틀이 마련돼야 시에서도 예산을 단계적으로 전개할 수 있다. 전반적인 사업비 승인과 계획 수립이 이뤄진다면 부서 이동으로 인해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후임자, 즉 담당 공무원의 마인드에 따라 사업이 파편적일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의 근대건축물 활용에 있어 타 시도나 해외 좋은 사례가 있다면.

▶손 교수= 대구가 좋은 사례다. 대구 동성로 약전골목 등 일제시대 조성돼 근대적인 가치를 지닌 장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개선하는 중이다. 망가진 건물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와 지자체 등이 매입해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활용 방안 모색을 위한 협의체에는 건축가, 교수, 시민단체, 공무원 등이 함께 포함돼 있다. 20여 년 간 지속적인 설득 과정과 우여곡절을 거쳐 이 단계까지 왔다.

▶배 부장= 해외의 경우 기타큐슈 모지코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모지코는 우리 인천 개항장과 비슷한데, 모지꼬의 역이나 대합실 등 이런 건물들이 남아 활용되고 있다. 인천의 경우 박물관이나 카페 등으로 근대건축물의 활용이 제한적인데, 일본은 커뮤니티센터 등 근대건축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도 전시관, 박물관 등 단조로운 활용 방안에서 벗어나 이를 다양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인천의 근대건축물 보존 방안 등에 대해 조언한다면.

▶이 의원= 이제는 인천이 행정과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구축에 힘써야 한다. 행정적으로 모든 전문가를 갖추는 것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 내 대학에서 필요한 전문 인력이 양성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지역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가 투입된 거버넌스 체계라면 근대건축물의 유지 방안 모색이나 종합적인 전수조사에 있어서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손 교수=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의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사실 지금 인천의 근대건축물 활용은 관광과 돈벌이를 위한 보여주기식 사업이다. 애경사 건물의 경우도 조금만 더 활용 방안이 모색됐다면 팟알과 같이 외관은 유지하면서 내부를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등의 활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주차장을 짓기 위해는 해당 터의 건물을 모두 부숴야 한다는 생각, 근대건축물은 카페나 전시관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 등 고정적인 생각에 변화가 필요하다.

▶김 처장= 이번 애경사 건물의 경우 민민 갈등이 생길 필요가 없는 것인데, 행정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시민 간 갈등을 조장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지자체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애경사 건물도 보존하면서 주차장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될 수 있었을텐데 결국 갈등만을 조장하는 상황이 돼 아쉽다. 중구가 역사적인 장소성을 지닌 한편, 구도심이기 때문에 주차장 확충 등에 대한 욕구도 있는 만큼 이를 절충할 수 있는 접근방식은 없는지, 신포역에서 동화마을까지 걸어오는 프로그램 마련 등 주차장을 늘리지 않고도 관광객들을 유치할 방법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관련기관과 전문가가 협력해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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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수 부장
▶배 부장= 무조건적인 보존은 지양돼야 한다. 오래된 근대건축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존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다. 현재 지역에 남아있는 수많은 근대건축물 중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골라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선별적 보존을 위한 전문가 양성 정책, 그리고 이들과 협력하며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전담기구가 꼭 마련돼야 한다. 우리 지역민이 아닌 타지 사람이 와서 외관만 보고 근대건축물의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지역에서 양성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보존 방안을 강구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정리=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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