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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웰빙(Well- being)이란 말이 유행된 지 이미 오래다. 국립국어원에서 ‘웰빙’을 ‘참살이’란 순 우리말로 순화해서 부르자고 제안하긴 했으나 아직도 참살이란 말만 쓰기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고 어색하기까지 해서 두 단어를 혼용하는 것이 편하다.

 참살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웰빙(well­being)’을 순화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간단하게 나와 있고, 백과사전에는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네오 웰빙(Neo Well-Being)이란 말도 등장했다. 단순히 건강에만 중점을 뒀던 참살이를 뛰어넘어 심신의 안녕과 건강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의 행복까지도 추구하는 발전된 참살이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참살이인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인지를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웰빙 즉 참살이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유기농 식재료만 취급하는 상점이나 대형 마트의 식품코너, 아파트와 주택가 인근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요가, 피트니스센터, 심지어 스파나 마사지 업소 같은 곳도 웰빙이란 이름을 걸고 생겨나고 있다. 의류·건강·여행 등 각종 상품은 물론 잡지까지 등장하고, 인터넷에도 수많은 웰빙 관련 사이트가 생겨날 정도이다. 웰빙 내복, 웰빙 고추장, 심지어는 웰빙 삼겹살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젠 ‘웰빙’이란 단어가 마케팅의 만능 접두어로 사용될 정도가 됐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위해 좋은 먹거리를 찾고 심신의 안락함을 추구한다는데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물질보다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추구한다는 참살이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참살이가 사치스러운 생활의 상징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다.

 참살이는 현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드러난 인간성 상실과 사회적 병폐를 회복하기 위해 일보다는 여유로운 생활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삶의 양식이나 문화가 아니던가.

 그래서 일찍이 삼성경제연구소는 ‘웰빙 문화의 등장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웰빙 열풍은 도입 과정에서부터 사회 대안운동으로 출발한 서구사회와는 달리 철저히 개인적 웰빙을 추구하기 위한 상품 구매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삶의 질을 측정한 ‘웰빙 지수’가 1년 만에 크게 하락하며 아시아 태평양지역 13개 주요 국가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참살이다’라고 딱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질병이 없는 건강한 심신,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느끼는 안정된 소속감이나 적절한 성취감, 가족간의 유대, 적당한 여가생활,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들을 척도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참살이를 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 고가의 색소폰을 덜컥 사놓고 몇 달 연습을 해봤지만 리듬에 맞게 손가락이 돌아가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기타는 좀 쉬울 것 같아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가, 수영, 와인, 인문학강좌, 회화 등등 시작은 요란하게 했으나 역시 작심삼일이었다.

 참살이의 방법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지만 단순히 개인적 웰빙을 위한 웰빙 상품 구매가 아닌 훌륭한 사회통합 수단으로서의 참살이 배우기가 범사회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이는 초중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노년층까지 확대돼야 할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우리 모두의 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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