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본사가 아닌 경주 모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열고,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키로 의결했다 한다. 전날 노조의 반발과 주민들의 반대 집회로 이사회가 무산된 데 따른 후속대책의 일환이긴 하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어 걱정스럽기만 하다. 발단은 지난달 27일 열린 국무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회의에선 ‘공사를 진행하며 공론화하자’는 방안도 구두보고 형태로 제시됐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일단 중단하자"는 한마디에 760개 업체, 인력 5만 명이 투입된 8조6천억 원 규모의 공사는 바로 올스톱돼 버렸다. 물론 현 정부의 롤모델인 독일의 메르켈 정부도 원전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는 ‘정치적 역량과 기술적 역량’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있었다. 비슷한 고민을 했던 프랑스·일본과 달리 독일만 유독 원전 폐쇄를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38년 역사의 녹색당’ 등 선거를 통한 정치개입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원전의 대안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재생에너지 기술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강력한 결단’부터 내렸기에 이런 사달이 났다.

 탈원전 정책이 가시화된 이후 새롭게 지적된 문제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록 재생에너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대안이긴 하지만 아직 충분한 효율성을 기대하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우리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산지가 많은 경우는 부지 확보도 쉽지가 않다. 전기료가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친환경 에너지로 알려진 LNG(액화천연가스)는 인체에 해로운 초미세 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설상가상 탈원전 정책이 한국 원전의 신뢰도 하락과 향후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차분히 면밀한 계획을 갖고 접근하기 바란다. 그리고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의 제안처럼 다양한 ‘에너지 레인보우’ 정책으로 국가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게 합리적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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