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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1929년 6월 12일에 발간된 대중잡지 「삼천리」 창간호는 "全 朝鮮 文士 公薦 新選 「半島八景」 發表, 그 趣旨와 本社의 計劃"이란 특집 기사를 싣고 있다. 시기적으로 여름 행락철이 가까워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제목 그대로 문사들에게 한반도 명승 8군데를 임의로 선정케 하여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순서대로 새롭게 ‘半島八景’을 선정하는 내용이다. "그릇된 어떤 작위(作爲)의 소치로 젊은이들 사이에 산천까지 남의 것을 더 낫게 찬탄하는 가통(可痛)할 경향"을 광정함과 더불어 "명승이란 대개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곳"으로 오늘 "새로운 사안(史眼)"을 통해 "민중으로 하여금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닫게" 하려 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거기에 "좋은 산수가 있는 곳엔 좋은 인물이 나고 좋은 산수를 보는 눈에는 좋은 글과 좋은 생각이 우러나온다"며 "산자명미(山紫明眉)하기로 아세아에 으뜸인 이 산천을 소개함으로써 제씨에게 산하 답파(踏破)의 장거를 촉(促)하며 또 우리 조선인의 자부심을 굳게 하는 기연(機緣)을 짓고자 하는 바"라는 포부도 덧붙이고 있다.

 발표에 따르면 ‘半島八景’ 선정 설문에 응답한 문사는 춘원(春園), 벽초(碧初) 등 총 37인이다. 주소 불명으로 삼천리사에서 설문지를 보내지 못한 문인과, 설문에 응하기는 했지만 잡지 편집 이후 늦게 도착한 응답은 부득이 계산에서 제외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문인 34명의 압도적 추천을 받은 금강산을 필두로 28인의 표를 받은 대동강에 이어 부여(21), 경주(13), 원산 명사십리(11), 해운대(10), 백두산(8), 진주 촉석루(8)의 순서로 ‘半島八景’이 선정된다.

 톱8경에 끼지 못한 차점 명승 중, 2인 이상이 천거한 곳은 만월대(6), 석왕사(6), 압록강(5), 주을온천(5), 약산동대(5), 박연폭포(4), 지리산(4), 통군정(3), 한강(3), 월미도(3), 장수산(3), 선죽교(2), 제주도(2), 총석정(2), 백운대(2), 한라산(2), 구월산(2), 칠보산(2), 옥류천(2), 마산해안(2), 묘향산(2), 부산잔교(釜山棧橋,2), 다도해(2) 등등이다. 1인 추천지로는 낙산사, 두만강, 설악산, 창경원 비원, 계룡산, 낙동강, 경성역두, 신의주세관, 종로네거리, 망월사, 소요산, 남한산성, 황주 월파루, 해인사, 인왕산, 금강 일대, 온양온천, 울릉도, 한산도 등이었다.

 인천 월미도는 아쉽게도 3인의 추천으로 차점 지역에 속하고 말았다. 당시 월미도는 원산 명사십리, 동래 해운대와 함께 특히 여름철 위락지로서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고들 하는데, 두 곳은 11인, 10인의 추천을 받아 당당히 8경에 끼인 것이다. 물론 전국의 유수한 명승지들이 1표에 그치고 만 것을 보면 나름대로 월미도가 상당한 승지였음은 짐작할 수 있다.

 월미도를 추천한 문인들은 바로 ‘가고파’, ‘성불사의 밤’으로 잘 알려진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과 ‘논개’의 시인 수주(樹州) 변영노(卞榮魯), 그리고 우리 근대문학 초기의 여류 문인이었던 일엽(一葉) 김원주(金元周), 이렇게 세 사람이다.

 아무튼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월미도가 차점 명승지로나마 꼽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당시 일제는 월미도를 유원지구로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위락시설 확충과 교통 정비, 홍보 등에 노력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그나마 3인의 추천으로 이어지게 했는지 모른다.

 오늘날 문인들이 8경을 꼽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인천의 어느 곳이 최소 3인의 추천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인천이 추천된다면 그곳은 틀림없이 천혜의 비경을 가진 앞바다 섬들일 터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88년 전, ‘半島八景’을 고를 때처럼 단순한 자연 풍광 위주가 아니라 교통의 편리와 시설의 안락함, 거기에다 외지 손님을 맞는 순박한 주인의 인정이 될 것이다. 이 기본을 오늘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삼천리」는 기사 말미에서 ‘이렇게 얻은 八景을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기행문으로 정리해서 더욱 널리 세상에 알릴 계획’임을 밝힌다. 이 또한 깊이 새겨 두고 응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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