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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時調詩人
지난주 새 대통령이 해외에서의 정상외교를 통해 나라의 실추된 위상을 세우고 돌아왔다. 요즘 여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높이 지지한다는 보도다. 이는 전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구중궁궐 속 불통의 상징으로 비춰진 데에 대한 반작용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새로 임명된 고위공직자나 지명되는 후보자들이 문 대통령이 공약한 위장전입 등 고위공직자 부적격 5대 비리나 그 이상의 비리를 저질렀어도 용납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청문회 대상 22명 중 15명이 1개 이상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지도를 앞세워 이들을 임명하는 것은 난국의 불씨를 안고 가는 것과 같다.

 그들이 올바르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민생고에 바쁜 서민들에게만 바르게 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식을 훈육해온 대다수의 국민들은 삶의 가치관에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인재 등용의 폭을 넓혀 올바른 사람을 임용한다면 정권은 더 안정될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수재민을 비롯한 농심은 망연자실이다. 오랜 가뭄과 연이은 폭우로 우울한 이때, 난국일수록 희망의 노래가 필요하다. 인간 세상의 행불행 속에서도 시절 변화는 막을 수 없는 것. 올해도 벌써 하지와 초복을 넘어 낮이 점점 짧아지는 7월이다. 울울창창한 푸른 숲정이의 계절이다.

푸를 때는 / 솥단지에 펄펄 끓는 들풀이다 ∥ 그 풀물에 삶겨들어 / 세상만사 더 푸르다 ∥ 청운도 / 푸름에 겨워 / 두리둥실 춤춘다. ―<녹음(綠陰)> 전문

과연 여름이다. 숲마다 들마다 푸름이 넘쳐난다. 졸작 단시조(短時調) 한 수로 읊어보았다. 대망의 푸른 구름이 두리둥실 춤을 춘다. 가물고 무더울수록 녹음은 더 시원하다. 시조는 바로 녹음이요,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이다. 역경 속에서 피는 꽃이 더 곱듯이 시조는 저 천여 년의 역경을 헤쳐온 겨레의 곱디고운 노래가 아닌가. 근대 서구문물을 등에 업고 일본을 거쳐 들어온 이른바 자유시의 거센 물결에 밀리면서도, 우리 말글을 말살하려 한 일제강점기를 견디며 끈질기게 살아왔다. 우리글로 써서 우리말로 읊어온 시조는 한겨레 얼의 상징이요, 민족문화의 산 증거다.

 ‘시조’는 이름 그대로 그때그때 작가가 처한 상황을 그 형식에 맞춰 쓴 것이다. 고로 시조는 항상 당대에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절에 늘 살아 있으니 사라질 리 만무하다. 3장 6구 12소절 속에 삼라만상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다. 우리 시가 중에 여태까지 살아 있는 유일무이한 정형시다. 이처럼 시조는 그 정형성, 역사성, 고유성으로 볼 때 오늘날 우리 시가의 종갓집 장자라 할 만하다. 그런데 지금은 양자 격인 자유시에 종가를 빼앗긴 모양이 되었다. 자유시집도 낸 바 있는 필자는 자유시를 비하하거나 원망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시조가 처한 우울한 실상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종가로서 그 정통성을 엄연히 보유함에도 어떤 연유에선지 이런 상황이 되었다.

 필자가 문청시절인 30∼40년 이전만 해도 시조는 엄연히 교과서에 자유시와 별도 단원으로 실려 공부했고, 또한 독립 장르로 모집한 대학 문학상에도 당선된 적이 있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시조의 율격미에 매료돼 외우고 짓던 고교시절의 그 교실이 떠오른다. 현행 중·고 교과서를 검토한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시조는 별도 단락은커녕, 그것도 몇 편을 자유시 속에 섞어 놓아 둘을 구분할 수가 없다고 한다. 가르치는 교사나 배우는 학생들이 과연 시조를 이해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필자가 수상한 대학 문학상에도 슬그머니 시조 장르는 사라지고 자유시만 남아 있었다. 시조는 자유시가 아니다. 자유시도 시조가 아니다. 두 장르는 광의의 ‘시가’나‘시’의 하나일 뿐이다.

 흔히 ‘시’라고 하면 자유시를 떠올리게 되고, 시조도 스리슬쩍 이에 딸린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유시와 구별이 잘 안 되는 극단적인 파격 시조가 나오고, 심지어 시조무용론까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새 정부의 문화분야 장관으로 저명한 자유시인인 도종환 국회의원이 임용됐다. 많은 시조시인들이 문학 관련 지원시책에서 시조가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거다. 시절도 시조도 우울하다. 얼마 전 중국에서 의뢰해온 조선족의 창작 시조를 검토해 보냈다. 해외에서 일고 있는 창작열로써라도 우울해 하는 시조를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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