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2006년 개정되면서 교육감 주민직선제가 도입됐다. 인천은 2010년에 이어 2014년부터 ‘2기 주민직선 교육자치’가 시행 중이다. 최근 이 같은 교육자치가 학교로 확대되고 있다. 학교의 시민이라 할 수 있는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에 의한 민주주의와 자치 실현으로 공교육을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일선 학교에서 일고 있다.

▲ 인천 도림초등학교 학생들이 대의원회의를 통해 학생자치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인천시교육청 제공>
# 학생부터 시작하는 교육자치

인천 지역 학교에서 일고 있는 학생들의 다양한 자치활동이 눈에 띈다. 학생 생활규정을 정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학생이 교사와 대등한 위치로 참여하는 학교들이 점차 늘고 있다. 복장과 두발, 봉사시간, 상·벌점 등 각종 규제뿐 아니라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교사, 학부모와 더불어 학생의 참여 비중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생활규정을 정할 때 학생 의견을 반영토록 하는 교육청 지침이 그것이다.

그동안 학교는 이미 정해 놓은 규정에 대한 학생 설문을 반영하는 형식을 취했다. 최근 들어 이러한 모습은 상당 부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규정에 있어 학생 참여는 설문 형식이 아닌 토론과 합의하는 과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교생이 모이는 생활규정 개정 공청회가 열리고, 학급회의와 학생회 대표들이 모이는 대의원대회가 숙의의 과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구의 석남중학교는 학생 생활규정에 ‘학생회장 탄핵 조항’을 신설했다. 해당 조항은 매달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모이는 교육공동체협의회에서 학생들이 먼저 제안한 부분이다. 이 같은 제안에 교사와 학부모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긴 논의 끝에 학생 재적 인원 30%가 발의해 소추하고, 3분의 2가 이를 찬성하면 학생회장에 대한 탄핵이 가결되는 조항이 학교운영위원회를 통과하기에 이른다.

초등학교도 이러한 변화에 예외는 아니다. 계양구의 명현초등학교 ‘시우터’는 같은 학년, 학생들이 매달 한 번씩 모여 학생 생활을 의논하는 자치기구다. 처음부터 초등학교에서 자치기구를 운영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초등학생의 산만함과 장난으로 회의가 무너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와 관련지어 의견 말하기, 모두에게 이로운지 생각하기, 수치심과 불쾌감을 주지 않기, 실천 가능한 방법인지 생각하기 등을 학생들에게 꾸준히 지도하면서 시우터는 자치기구로써 제 역할을 다하기 시작했다.

# 교사가 앞장서는 교육자치

동구의 서흥초등학교는 교사들이 모여 학교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를 아예 학교 의결기구화했다. 학교운영위원회와 같은 법적인 근거는 없지만 자체적으로 교사들이 모이는 회의기구에서 학교 주요 사안을 정하기로 교사들이 모두 합의했다. 이러한 회의의 특징은 학교 내부의 문제에 대해 교직원들이 제안한 안건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도 가진다. 회의 과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설득력이 관건이 된다. 교육청 지침 전달을 시작으로 교장·교감의 업무 지시를 회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열심히 받아 적던 일반적인 교사 회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학교 예산 중에서 학년과 학급이 자율적으로 편성해 집행하는 액수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교사의 자율이 강조되는 만큼 예산 등 행정체계도 학교 안에서 분권화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교사들이 공통으로 꼽는 학교자치의 핵심은 ‘자발성’과 ‘협력’이다. 인천시교육청 박인섭 장학사는 "자치를 중요시하는 학교는 수평적 학교 운영으로 자발성 높이기, 높아진 자발성으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혁신하기, 그 혁신을 지속하기 위해 다시 수평적으로 모이는 선순환을 추구한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에 대한 질문이 풍성해진다"고 설명했다.

# 학부모도 참여하는 교육자치

학생·교사와 마찬가지로 학교의 구성원인 학부모도 학교자치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학교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동원되는 봉사요원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참여하는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학부모들의 입장이 변모하고 있다. 동암중학교 학부모회는 새 학년 학부모 총회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다. 신입생 학부모들에게 교사를 소개하고 학교를 안내하는 것도 학부모회의 몫이다. ‘부모 교육’ 강좌를 열거나 교육활동을 직접 기획해 참여하기도 한다. 동암중 이외에 재능 있는 학부모들은 그림책 읽어 주기와 놀이활동 보조, 농작물 기르기 체험, 예술공연 체험 등에 직접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 학교의 학부모회는 성인들의 자아실현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들 학부모회는 음악·미술·독서·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학부모 동아리를 구성하고, 학교는 이런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학부모회 공간을 마련해 준다. 지난달 29일 교육기부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부원초등학교의 ‘맘스 인형극단’도 2013년 구성 당시 신입생 학부모 대여섯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단체다. 하지만 맘스 인형극단은 연간 초등학교 20여 곳의 초청으로 흡연 예방·학교폭력 예방·성교육을 주제로 한 공연을 진행하는가 하면, 일반 시민과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무대를 넓혀 가면서 다양한 기부활동까지 이어가고 있다.

# 교육 자치를 위한 학교 자치 바로 세움

시교육청은 올해를 ‘학교 민주주의’의 해로 선언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자치활동 지원에 나섰다. 학생자치 공간 마련을 위해 중·고 100개 교를 선 정하고 5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학교 예산에 학부모회 운영비를 100만 원 이상 편성하도록 권장하는 등 학부모회 활동의 여건을 마련했다. 지난해 인천시의회에서 발의해 통과된 ‘학교 학부모회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는 올해 새 학기부터 적용돼 다양한 학부모 활동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학교자치를 추구하는 교직원과 학부모들은 ‘지방교육자치는 곧 교육감선거’라는 그릇된 인식을 지적한다. 시민의 민의가 반영되면서 민주적 토론과 대화, 참여와 협력이 지역 공동체의 방향을 만들어 간다는 자치의 본령을 공교육에 적용하는 인식의 확장을 요구한다.

김진철 시교육청 대변인은 "학교 구성원의 다양성과 자발성이 교실과 학교에서부터 발휘되는 것이 교육자치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mi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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