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임에도 제법 붐볐던 지난달 29일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사람들 틈에서 연수구 동춘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들이 식재료를 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날은 동춘1동에서 ‘사랑의 밑반찬 만들기 나눔 행사’가 있는 날이다. 이 행사는 동춘1동 새마을부녀회가 수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씩 진행하는 나눔사업이다. 협의체 위원들은 감자조림과 오이소박이 재료를 꼼꼼히 골라 상자에 담았다. 장보기를 마친 위원들이 서둘러 향한 곳은 동춘1동 주민센터 지하 1층 조리실. 사랑의 밑반찬 만들기가 정기적으로 이뤄지면서 주민센터 직원들과 주민들이 손수 마련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식재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부녀회원들은 곧바로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부녀회는 가정 방문 봉사를 하던 중 우리 주변에 스스로 반찬을 만들어 먹기 힘든 가정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지속적으로 밑반찬 나눔을 해 오고 있다. 밑반찬은 매달 제육볶음과 삼계탕, 제철나물, 감자조림 등 다양하게 준비된다. 2년여 전부터는 협의체와 동춘1동 주민자치위원회 등 다른 자생단체도 합심해 함께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부녀회원들은 더운 날씨에도 힘든 기색 없이 수십 인분의 반찬을 조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히려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 동춘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비롯한 자생단체들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무심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꼬박 두 시간이나 걸린 낮 12시 30분께가 돼서야 부녀회원들은 밑반찬 배달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조리와 배달 준비에는 역시 협의체와 주민자치위원회가 힘을 보탰다. 간단히 점심 식사를 마친 이들은 3~4명씩 조를 이뤄 사례가정 방문을 시작했다. 동 주민센터가 ‘이웃사랑 반찬 나눔 및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선정해 준 23곳이다. 장애가정과 홀몸노인가정, 소년소녀가정 등 유형도 다양하다. 김영수 협의체 위원장과 임용자 부녀회장 역시 일일이 사례가정을 돌며 말동무를 자처하고 있다.

 가끔 동춘1동 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병원 봉사자들이 노인들의 정서 지원과 취미활동을 위해 함께 하기도 한다. 매달 2회 정기 봉사인 만큼 홀몸노인들은 회원들이 올 때를 기다려 집 앞에 나와 있는 경우도 많다. 이들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반가워서인지 매번 거르지 않고 이들을 마중 나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매번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곳은 지적장애를 가진 한 사례자의 집이다. 거동이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주거 상태가 매우 열악하고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음식을 해 먹을 여력이 없는 장애인이다. 이날 역시 밑반찬을 전해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김 위원장은 "얼른 저 낡은 벽지를 새로 칠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동춘1동은 인천시나 다른 기관의 지원·기탁이 아닌, 주민센터와 지역 자생단체가 함께 하는 봉사가 가장 활발한 동네다. 동춘1동 내 큰 기업이나 단체가 없어 지정기탁은 거의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다량의 생필품을 지원하거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주 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협의체 주도로 저소득 취약계층 가정의 이불을 세탁하는 봉사도 진행했다. 일명 ‘사랑의 이불빨래’인 이 사업도 밑반찬 나눔과 마찬가지다. 주민센터가 취약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대상자 10곳을 선정하면 협의체 위원들이 해당 가정을 방문해 세탁봉사를 실시하는 형태다. 위원들이 직접 이불을 수거한 뒤 세탁과 건조 과정을 거쳐 다시 배달하는 등 정성을 담은 봉사다. 이 봉사 역시 동춘1동 주민들이 흔쾌히 기부한 연합모금액으로 마련됐다.

 이 외에도 경로당 일대일 방문을 통한 말벗 봉사, 함께 나무 심기, 중증장애인 결연 등 다양한 나눔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다. 여기에는 주민센터와 자생단체들을 중심으로 동춘1동 소재 학교와 병원, 교회, 복지관, 그 외 지역 단체 등이 동참한다.

▲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이 ‘사랑의 밑반찬 만들기 나눔 행사’를 위해 직접 만든 감자조림을 나눠 담고 있다.
동춘1동 주민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역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의 밑반찬 나눔사업을 아는 주민들은 "우리 주변 이웃을 돕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감자나 오이 등 식재료를 넉넉히 기부하거나, 어려운 생활 환경에 처한 학생들에게 자체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한다. 동춘1동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은 재능기부를 통해 지역 학생들의 멘토를 자처하기도 한다. 지역 내 학생들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함께 매주 1회 산책을 나가는 것도 정서적 나눔의 좋은 사례다. 다른 기관이나 단체 기부에 의존하지 않고 동춘1동 내에서 자체적인 연계를 통해 주민 복지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몇 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동춘1동 소재 학교에 다니는 저소득 학생 한 명에게 장학금으로 20만 원씩 전달하고 있다"며 "지역의 자생단체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웃을 돕고자 힘쓰고 있으며, 이는 기관 등의 기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주민 스스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동춘1동이 연수구 내 다른 동에 비해 좁은 편이라 그런지 주민들 간 화합이나 협동이 굉장히 잘 되는 편"이라며 "앞으로도 지역 학생들이나 단체, 기관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실천할 수 있는 이웃 돕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은 홀몸노인이나 수급자 등 저소득 이웃들을 대상으로 한 나눔을 이어왔는데, 이제는 경로당 어르신들이나 맞벌이가정 자녀 등 다양한 이웃들과의 소통과 지원에도 힘쓸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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