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이 떠오른다. 그 길은 ‘마을’로 이어진다. 하지만 학교 밖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모른다. 자신의 학생 시절과 별다를 바 없을 거로 생각한다. 학교 안에 있는 교사들도 학생들이 사는 마을과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교육이 그렇다. 언젠가는 내가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떠나야 하고,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뒤처진 실패한 이들로 치부된다. 마을에 대한 이런 인식, 태어나고 자란 곳에 대한 부정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에서도 비교와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한다. 학교는 단순한 통과의례가 돼 버렸다. 학교와 교육의 본질,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배우고 개개인의 탁월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바꾸고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다시 마을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 중심, 중앙 지배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마을을 통한’, ‘마을을 위한’ 삶을 꾸려 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시흥시가 이러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5년 4월 학교와 마을을 연결하는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가 문을 연 이후 시흥의 교육 혁신이 한창 진행 중이다.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는 먼저 교사와 행정공무원의 협업을 시도했다. 협조가 아니라 협업이다. ‘교육과정, 배움, 교과, 창의적 체험활동, 정규수업과 방과 후 수업’ 등 교육에 관계된 용어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달랐다.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지만 학생들의 배움을 깊고 풍성하게 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머리를 맞댔다.

# 학교 밖에서 ‘마을을 배우는 시흥창의체험학교’

시흥창의체험학교는 이런 고민의 결과이자 교육 혁신의 시작이다. 시흥의 문화, 역사, 생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 자원을 체험학습터로 만들어 학교교육과정과 연계를 통해 우수한 마을교육과정을 생생하게 배우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시는 이를 위해 시청 여러 부서에서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조사하고, 시흥혁신교육지구 산하 혁신교육연구회 교사들과 첫 모임을 했다.

▲ 염전에서 소금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는 창의체험학교의 아이들.
프로그램이 학교와 만나기 위해 대상이나 교과단원, 운영시간, 운영 횟수나 규모, 교육수준 등을 컨설팅받았다. 또한 교사가 참여하기 쉬운 언어로 바꾸고 버스 임차나 강사비, 모니터링 등 행정 지원을 비롯해 교육청 현장학습 매뉴얼을 행정의 시각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이처럼 차근차근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결과 학교가 마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시화호에서 요트를 배우고 늠내길, 연꽃테마파크를 걸으며 생태문화를 탐방한다. 능곡 선사유적지에서 역사를 배우고 오이도 갯벌과 염전, 방산동 가마터에서는 체험을 한다. 눈길이 닿는 곳곳, 발길을 내딛는 곳곳 모두가 체험터이자 배움터로 시흥시 전역이 교과서가 되는 셈이다.

 현장학습을 하러 관광버스를 타고 멀리 나갈 필요도 없이 동네 구석구석이 학습장이다. 일회성 나들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사는 마을을 배움으로써 현실과 실천의 문제를 고민하는 진짜 학습을 한다. 시흥창의체험학교는 이러한 변화를 인정받아 시흥시 정부 3.0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 학교 안에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하는 마을교육과정’

학교 안에서도 혁신은 이어진다. 마을에는 생태, 놀이, 역사,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런 전문가들이 가지고 있는 풍성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학교와 마을이 마을교육과정을 함께 고민하며 수업을 만든다. 마을의 상상력이 보태져 전래놀이, 다문화 체험 등 보다 완성도 높은 프로젝트식 수업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마을 강사들이 수업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쉽지는 않다. 학교의 기존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 강사들이 학교를 찾아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하면 어느 학교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업의 전문성이다.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것과 그것을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풀어가는 것은 다르다. 더욱이 주입식 교육을 받은 어른들이 학생들과의 교감도 없이 좋은 프로그램으로만 수업한다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배움을 방해할 수도 있다.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는 마을의 교육력이 학교 수업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센터의 연결 역할이 절실함을 깨달았다. 혁신교육연구회 교사들과 기존에 학교에서 수업했던 경험이 있는 단체, 앞으로 학교에 들어가서 수업을 하고 싶은 단체들의 수업안을 검토했다.

 각 단체에 수정·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알려 주고 교사의 요구가 반영된 프로그램을 정리해 각 학교에 안내했다.

 시흥행복교육지원센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을 프로그램 안내, 학교와 마을 매칭, 마을과 학교가 함께 교육과정 만들기, 마을 선생님 성장 프로그램 등을 통해 2015년도 2학기부터 학교 교사와 마을 전문가가 협력을 통해 수업하는 마을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초·중등학교 85%가 정규 수업시간의 문을 열었고 마을이 들어갔다. 이처럼 학교와 마을의 담벼락 허물기를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기업가정신도 배우고 있다. 혁신과 변화를 위해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시는 창의체험학교와 마을교육과정을 통해 이러한 방향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 ‘교육자치’ 꿈꾸는 시흥

이제 마을과 학교가 교실 내에서 세 번째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은 더욱 촘촘해졌다. 학교와 마을의 행정이 시흥 교육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소통의 장이 펼쳐진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서 마음껏 보고 즐기며 배우는 것, 학교에서 지식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학교와 마을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상상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것. 지금 시흥에서 움트고 있는 교육자치의 모습이다.

 시흥=이옥철 기자 oclee@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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