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부경기문화창조허브에 입주한 고재중 웹툰 작가
요즘 일자리 창출이 화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접 나서 청년 창업 지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창작’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는 웹툰 작가가 있다. 데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투자받은 당찬 새내기 작가 고재중(27)‘펜더툰’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의정부시 의정부동 CRC빌딩에 위치한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에 입주해 작품을 연재하고 있는 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팬더툰(pen the toon)’은 귀여운 이미지의 ‘팬더’와 ‘펜(Pen)’으로 ‘만화(cartoon)’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웹툰 작가들의 모임이다. 고 대표를 비롯한 13명의 작가 및 어시스트들이 경기문화창조허브에 모여 각자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며 아이디어를 얻어 간다. ‘작가’라고 하면 혼자 작품을 완성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고 대표는 웹툰시장이 커지며 요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낼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고 대표는 "서로 협력해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만든 모임으로, 인덕대 만화영상 애니메이션학과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됐다. 정부 지원사업에 도전하려고 사업자등록도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고 대표는 지난달부터 격주로 카카오페이지에서 ‘유부남 히어로’란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기존의 히어로들과는 달리 유부남에 처가살이까지 하며 히어로 생활을 하는 주인공 ‘강혁’의 이야기다. 장모가 히어로를 싫어 해 들키면 안 되는 생활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주인공의 직업도 웹툰 작가다.

 

"여태껏 히어로물이나 일상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많았지만 이 두 가지가 합쳐진 웹툰은 없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재택 근무를 하며 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직업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웹툰 작가’가 주인공이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책상에 10분만 앉아 있으면 10만 원을 준다고 해도 30초 만에 일어났다는 그는 6학년 때부터 ‘낙서’를 하며 길게는 8시간까지 앉아 있었다고 한다. 막연하게 그림으로 먹고살리란 생각으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해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화에 푹 빠지게 됐다. 이후 애니메이션 학과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현재 고 대표의 에이전시 대표를 만나게 된다.

 "웹툰 작가는 연예인과 비슷하다. 창작이라는 면에서 아티스트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티스트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웹툰 작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어야 먹고살고, 기획사가 있어야 플랫폼에 노출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연재하기 위해 ‘도전만화’ 형식의 공모전에 신인, 아마추어 작가들이 대거 몰리기도 한다. 하지만 장르적 다양성이 포화상태에 온 지금, 작가 홀로 플랫폼과 계약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기존 작품들이 특정 장르를 선점해 버린 상태에서는 작품성이 좋아도 걸러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에이전시들은 이 같은 작품들을 발굴해 계약을 맺고 플랫폼과 연계하거나 해외 수출 등을 타진하기도 한다.

"요즘 웹툰 작가들이 못해도 중소기업 과장급의 연봉을 받는다고 하는데, 고액 연봉 작가는 극소수일 뿐이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작가도 많고 수입이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고 대표는 웹툰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장르적 특이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은 물론 본인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연재도 하기 전에 크라우드펀딩을 시도해 목표액을 달성했다. 유부남+히어로를 소재로 한 것도 그렇지만 크라우드펀딩에서 기성 작가말고 작품도 안 낸 새내기 작가는 없었다는 점에 착안했다.

 "사실 웹툰 제작비도 필요했지만 돈보다는 홍보에 목적을 둔 시도였다. 펀딩 과정에서 자신감과 책임감도 생겼고 현재 투자자들에 대한 리워드를 준비 중이다."

 다양한 시도에는 단연 정부 지원도 포함된다. 고 대표는 자신과 자신의 팀원들이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러던 차에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를 접하게 됐다.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는 분기별로 입주자 또는 팀을 선정해 창업을 위한 공간, 장비 등을 지원하고 6개월 마다 연장심사를 통해 최대 2년 동안 작업공간을 임대해 준다. 경기도와 의정부시가 2015년 6월 설립한 청년 취·창업 지원기관 ‘북부 경기문화창조허브’는 교육과 멘토링, 창업자금 지원 등으로 제조업과 문화콘텐츠가 융·복합된 청년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창업이 44건에서 69건, 일자리 창출은 94건에서 182건, 스타트업 지원 건수는 571건에서 1천524건으로 증가하는 등 모든 지원사업 전반에 2배 이상의 성장을 이뤄냈다. 디자인 제조·콘텐츠 융합 분야의 예비 창업자와 창업 5년 미만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입주기업을 모집해 최소 6개월에서 최대 2년간 전용 사무공간을 월 10만 원 수준으로 임대해 준다.

 작품활동에 탄력이 붙은 그는 다른 팀원과 함께 지난달 부천만화진흥원에서 시행한 공모전에서 세계공감웹툰, 세계발굴웹툰에 선정돼 각각 6천만∼7천만 원, 1천만 원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를 기반으로 그의 작품은 현재 에이전시를 통해 중국·동남아·북미 등 해외 수출을 준비 중이다.

"중국도 우리나라만큼 웹툰시장이 발달해 있다. 특이한 것은 스크롤 형식이 아닌 기존 종이책처럼 페이지 형식으로 웹툰을 게재한다는 것이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그는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페이지(칸) 형식으로 웹툰을 제작하느라 별개의 구도와 컷 작업에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우리가 보통 5분이면 보는 웹툰 1화 분량을 그리기 위해 평균 1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의 책상에는 컴퓨터와 태블릿PC 등 전자제품 외에도 콘티 및 칸 작업을 위해 밑그림을 그린 종이들이 수두룩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꼼꼼히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는 어시스트도 없어 남보다 더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

 독특한 소재를 발굴하고 정부 지원까지 받기 위해 고 대표는 그야말로 동분서주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고 대표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 ‘베르세르크’란 작품을 집필해 온 일본의 미우라 켄타로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웹툰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해 왔고 앞으로 유명한 작가보다는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의정부=신기호 기자 skh@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