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단어다. 하지만 이를 ‘정의(定義)’하기란 쉽지 않다. 단어 자체가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전문가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얼마 되지 않은 태생적 한계, 정체성의 모호함도 있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융·복합(融複合)’으로 대체할 수 있다.

▲ VR AR 글로벌 개발자 포럼인 #GDF 2017 에서 기조연설 중인 이재율 부지사. <사진=경기도 제공>
4차 산업혁명 혹은 융·복합은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 고정관념이 없다. 고정관념이 없다는 말은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 동시에 얼마만큼의 영역을 확보할지도 미지수란 의미다. 이를 보여 주듯 ‘산업’ 뒤에 ‘혁명’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기대감이 반영돼 있고, 커다란 변화를 감지한다. 융·복합의 확장성은 최근 수년간 화두로 떠오른 ‘청년 일자리’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끈다. 그리고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 움직임은 관측되고 있다. 경기도는 4차 산업혁명의 최근 트렌드인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도내의 경우 20∼30대의 젊은 층 유입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 최신 기술과 일자리 융·복합이 접점을 이룬다. 경기도는 2018년까지 관내 VR·AR 혁신기업 100개를 육성하고, 킬러 콘텐츠를 15개 이상 제작해 유통하겠다는 목표다. 예산 100억 원과 펀딩 380억 원을 투자해 판교·광교·의정부의 경기창조문화허브, 부천의 경기도콘텐츠진흥원 등과 함께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인천시는 융·복합으로 ‘통합’을 낳았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체육 시대’를 연 것이다. 인천시체육회를 중심으로 ‘통합인천체육’을 반석 위에 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왔고, 체육의 두 방향성은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이런 융·복합은 ‘관(官)’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의 영역이 사회적 공감각을 이루기도 한다.

▲ 4차 산업혁명 대비 일자리 대응 전략 토론회
안성시장에 자리잡은 김도영 대표의 청년카페 ‘징’이 대표적인 예이다. 일반적인 카페의 개념을 넘어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공간으로 자리하는 곳이다. 33㎡의 작은 공간에 지나지 않지만 청년들에게는 도전의 장소이다. 비단 청년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도전은 침체돼 있던 인근 상인들에게까지 영향을 줘 시장 자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의정부시에서 웹툰 작가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고재중 ‘펜더툰’ 대표 또한 이런 개인 중 한 명이다. 데뷔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투자받은 당찬 새내기이지만 13명의 작가 및 어시스트들을 어우르며 창조적인 웹툰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 그들이 내놓은 작품은 ‘웹툰’이라는 기존 명제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융·복합은 또 사람만의 영역이 아닌 테크놀로지(technology)로 이어진다. 2015년 인천신항 개항에 맞춰 등장한 컨테이너 운반 기계 ‘갠트리 크레인(Gantry Crane)’은 인천신항의 아침을 열고 있다. 통상 ‘101호기’부터 ‘105호기’까지 숫자로 불리지만 이 기계가 하는 일은 수출입으로 오가는 오프라인 실체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반한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전기장치 속에 여러 작동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하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영역을 대체한다. 하루 종일 옮기는 컨테이너는 20피트 기준 최대 1천500개가량이다.

작은 변화로 출발한 융·복합은 결국 ‘도시재생’으로 귀결된다. 평택항의 경우 무역의 중심으로 우뚝 서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끄는가 하면, 양평군은 특화된 전통시장을 통해 양평만의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양주는 ‘양주관아지’ 종합정비사업을 통해 시의 역사적 상징성을 회복하고 도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또 나눔을 통해 주민 복지를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가 하면(인천시 동춘동), 마을 공동체를 통해 살기 좋은 우리 동네를 실천하고 있고(인천시 남구) 오산시는 유니세프 친화도시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평생학습도시를 꿈꾸고 있다.

융·복합은 현재 진화 중이다. "우리는 공항에서 일하지만 명찰에는 용역업체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제는 인천국제공항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달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한 인천국제공항의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바람처럼 융·복합이 완성돼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박노훈 기자 nhp@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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