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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이야기는 반드시 필연적이고 개연적인 사건의 결합이 인과론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우연성에 기대지 말라는 의미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이 실제 인생과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와의 절대적인 차이일 것이다.

 한 편의 잘 짜인 극 안에는 버릴 요소가 없다. 스치듯 지나친 하나의 에피소드도 결국엔 전체적인 서사와 치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처럼 명확한 인과관계 속에서 나름의 논리를 갖고 구성되는 방식이 영화적 삶이라면 현실은 그것과는 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리 삶에서 확실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오늘 일을 바탕으로 다가올 내일과 미래를 분명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불확정의 연속이다. 불확실의 미로에서 어떤 판단으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길에 우리는 서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시리어스 맨’도 이처럼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그리고 있다.

 1960년대 미국 미네소타에서 물리학 교수로 근무하며 나름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살아온 가장 래리는 조만간 종신 교수로 승진할 꿈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 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이 연이어 발생한다. 우선 아내가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해 왔다. 큰딸은 코 성형수술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가 하면, 사춘기 아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회성 부족으로 데리고 사는 백수 남동생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경찰 수사까지 받고 있으며, 거의 확정시 됐던 종신 교수 임용직은 누군가가 보낸 음해성 편지로 취소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겨우겨우 지내는 하루하루는 개선되지 못한 채 또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며 래리를 더욱 압박한다.

 언제나 논리정연한 수학을 사랑하며 반듯하게 살아온 남자 래리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유대인 현자인 랍비를 찾아 인생의 가르침을 듣고자 한다. 과연 랍비는 그가 원하는 명쾌한 정답을 찾아줄 수 있을까?

 영화 ‘시리어스 맨’은 미국을 대표하는 코엔 형제가 감독으로 이들 특유의 블랙코미디 정서가 잘 묻어나 있다. 이 작품은 주류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노선을 취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들 형제의 주특기인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서사로 영화적 흥미를 고취시킨다. 그러나 커다란 문제점에 직면해 있을 때 이들은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는 영화 ‘시리어스 맨’도 마찬가지다. 착하게 살아온 래리 앞에 직면한 갑작스러운 문제들에 대해 영화는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그 모든 사건들을 직시하게 한다. 이로써 그 답을 우리에게 찾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사실 래리가 불행해진 데에는 딱히 이유가 없다. 그저 일련의 불행이 한번에 그에게 다가온 것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도 혹은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행의 이유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는 벽에만 부딪힐 뿐이다. 만약 우리가 래리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에 무언가는 해야겠지만 어쩌면 더 나아지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시리어스 맨’은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해결 방식이 무엇이 건, 영화는 고난을 마주하는 유연한 방식을 우회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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