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우 고려대 연구교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승자가 충신으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권력을 둘러싼 파벌과 당쟁의 대립에서 승리한 자는 권력을 갖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역사를 재해석하고 그 권력이 잠시 계속되는 한 부귀영화를 누려온 과거의 역사를 새삼 이 삼복더위에 되새긴다. 이러한 당쟁의 연속으로 지속된 환국의 역사를 우리는 조선왕조의 양반정치에서 볼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그 수많은 역적논란들이 이 예이다. 긴긴 역사는 결국 진리로 정의를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년 전인 1589년 정여립의 역적모의 사건으로 당시 정권을 잡고 있었던 동인들 1천여 명이 대거 숙청이 됐다. 서인의 거두였던 정철을 정점으로 한 서인들에게 다시 권력의 칼을 쥐어 준 선조는 비대해진 동인세력들을 견제하는 차도지계로 서인들을 등용해 한쪽으로 기울어진 권력의 균형추를 복원한다. 그런데 그 복원의 폭이 너무 커서 1천여 명의 동인들이 밀려나니 이제는 서인중심의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선왕조 500년 내내 충신론 역적론은 정권을 잡고 상대방을 밀어내는 논리로 작동하면서 당쟁정치의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명분론과 당파론에 몰입됐던 조선의 양반계급은 위민정치를 위한 맹자, 공자를 배웠지만, 정작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 더 몰두하면서 많은 조선의 국왕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그들만의 권력을 즐기고 세습했다. 말로는 백성들을 위한다면서 정작 자신들의 권력을 즐겼던 것이다.

 일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잘 조련된 조총부대를 포함 전투병력 수십만을 양산하며 조선침략의 야욕을 드러내도 당시 조선의 문인계급은 그저 저 먼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며 간간히 제기됐던 일본의 조선침략론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는 방관으로 임하다 훗날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 국왕 선조를 정점에 놓고 동인, 서인은 명분은 백성을 위하고 국왕에게 충성한다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신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 싸움에 올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드물게 이이, 유성룡 같은 큰 인물도 있었지만 말이다.

 힘을 합해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군사적인 대비를 해도 그 당시 동아시아의 판도를 가르는 국제전으로 치달았던 임진왜란을 잘 치른다는 보장이 없었는데도 당쟁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신분계급사회의 경직성으로 외부의 큰 군사적인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죄 없는 백성들만 너무 많이 살상되고 삶의 고초를 그 전란의 후유증으로 처참하게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결과를 초래한 위정자들을 우리는 결코 충신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왕이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피난까지 생각했던 그 치욕을 잊으면 안 된다. 수백 년 전의 일이지만 그 역사적 교훈은 지금 우리 분단된 한반도에 더 크게 울리고 있다. 힘이 없는 나라는 항상 국민이 고생한다는 역사의 기록이 있고, 전쟁의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면 모든 국민과 지도층은 단합해서 이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도 모자라서 지금 대한민국은 소지역주의라는 중병을 앓고 있으며 북한변수를 놓고 각 정파들이 다른 해석으로 단합된 국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전후세대 중에서도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분단국가 국민으로서의 북한관, 국가관에 대한 통일된 식견이 부족하고 헌법정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정신이 바로서지 못하고 과거의 아픈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후손들에게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는 깨우침이 중요하다. 작금의 동북아정세는 우리가 원치 않아도 한국전쟁 이후에 가장 군사적 불안정성이 큰 한반도 주변정세로 이어지고 있으며 전환기에 있는 한미동맹을 놓고도 국내의 자칭 보수와 진보진영의 논쟁은 합의점이 없어 보인다.

 연일 완성도를 높여가는 북한의 핵 탄두와 ICBM/SLBM기술은 미국의 핵 우산에만 의존해온 대한민국의 안보를 매우 위태롭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드배치 문제를 놓고 여와 야가 단합된 국론통일이 안 되고 있다. 평화는 논리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힘으로 지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 이 순간 분단국가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진정한 충신은 안보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최대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안보태세 정립을 위해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만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사드배치 문제를 놓고도 옥신각신하는 시간이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이제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 대피훈련 한 번 안하는 이 나라의 정신적인 안보지수는 분명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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