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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용 변호사
대학 시절, 심리학개론 시간에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라는 용어를 배운 적이 있다. 우리말로는 ‘항상성(恒常性)’이라고 부르는데, 생명체에는 외부환경 조건이 변해도 내부환경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작용이 있다고 하여 이를 프랑스의 클로드 베르나르가 제안하고 나중에 미국의 캐논이 ‘호메오스타시스’라고 명명했다. 우리 인간의 신체를 예로 들면,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을 때는 간의 글리코겐이 분해돼 포도당으로 변해 혈액 중의 포도당 농도를 100mg/dl 전후로 유지시키고, 이 같은 절식(絶食)상태가 계속되면 지질, 단백질까지도 포도당으로 바뀌어 혈중 포도당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는 혈중 포도당 농도가 저하되면 뇌를 비롯해 신체의 중요한 조직에 중대한 장애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우리 신체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혈중 포도당 농도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반응하는데, 이 같은 생체작용이 ‘호메오스타시스’인 것이다.

 질병이란 호메오스타시스가 깨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영양공급’과 관련해서 좀 더 살펴보자. 우리 신체에 음식을 공급하지 않으면 먼저 당질이 소비되고 다음으로 지질, 단백질 순으로 소비되며, 더 이상 소비될 것이 없으면 혈당치가 내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당질을 비롯해 과식을 하게 되면 췌장에서 인슐린 호르몬의 분비가 증대되어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시키지만, 과잉섭취가 장기간 계속되면 췌장의 랑게르 한스섬 베타세포에서의 인슐린 분비장애로 인해 당뇨병이 유발된다. 이같이 우리 신체는 외부환경에 대응해 반응하면서 내부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작용을 하며, 만일 신체에 유해한 외부환경의 변화가 강하고 장기간 계속되면 호메오스타시스는 깨져버리고 질병을 초래하는 것이다. 호메오스타시스는 우선 ‘조화(harmony)’를 의미한다. 생명체의 경우 각각의 부위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사회 또한 각 영역이 상생(相生)의 원리하에 조화를 이뤄야 한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이 제대로 소리를 내려면 각 단원 한사람 한사람의 연주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과 같다.

 고대 서양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세계 만물의 근원이 숫자(number)들의 조화로운 만남에 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숫자 1은 최상의 수이고 모든 수의 출발점이지만 숫자 1의 최고의 가치는 숫자 2, 3 등 다른 숫자와의 일정한 비례관계를 통해 서로 조화를 이룰 때만 나타난다고 한다. 또, 아름다운 음악은 음과 음 사이의 멋진 수학적 비율에 있으며, 우리 신체의 건강은 신체의 각 부분들이 올바른 수학적 비례로 유지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다른 한편, 조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need)한 부분의 결핍(need)된 부분을 채워 줘야 한다. 영어 need는 ‘필요’라는 의미와 함께 ‘결핍’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조화란 필요(need)한 부분 간의 화합이다. 우리 신체에 어느 영양소가 부족하면 무의식적으로 그 부족한 영양소를 찾아 음식을 섭취한다고 한다. 사회과정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 빈곤에 허덕이는 저소득층을 위해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나눠 줘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벽을 깨기 위해 정규직이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부딪쳐야 박수소리가 나고 박수를 치면 칠수록 즐거워지고 건강해진다.

 호메오스타시스는 또한 ‘균형(gleich gewicht)’이다. 균형이란 대립된 요소들의 통일된 상태이다. 생명체로서 유기체는 유동적(fleissig) 균형상태를 이루고 있으며, 균형을 깨뜨리는 내외적 요소들에 대항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 신체도 균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율신경이 신속히 작용하고 내분비계가 반응하며, 외부나 내부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백혈구, 임파구 등이 나서서 싸운다. 사회의 경우에도 일정하게 합의된 민주적 가치를 위해 마치 백혈구처럼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균형은 불균형을 전제로 한다. 아니 불균형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이고 이같이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균형 상태다. 사회의 부(富)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일게 마련이다. 사회는 상생(相生)의 원리에 따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흔히 살아있는 생물이라 한다. 그렇다면 정치는 ‘호메오스타시스’에 따라 부족한 곳을 채워주고 합의된 가치를 위해 싸우며 조화와 균형을 위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이는 지금 현실이자 앞으로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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