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공된 지 30여 년 가까이 되는 아파트 총무를 9년째 맡고 있다.

 며칠 전 아침, 딩동 딩동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른다. 전날 밤 늦게 잠든 탓에 눈뜨기조차도 싫은데 계속해서 울린다.

 눈을 비비며 나가보니 아래층에 살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데 실외기를 1층 한 쪽에 놓으면 안되겠냐"고 묻는다.

 가구 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오래된 아파트라 수시로 이곳 저곳 손 볼 곳이 많다. 그래서 초저녁이나 새벽, 때를 가리지 않고 전화벨이 울리곤 한다.

 어느 날은 양산의 한 사찰에서 바다방생 행사 때문에 차로 이동 중일 때 한 아주머니가 전화를 해왔다. 몇 번인가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해서 위층과 의논하라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던 아줌마였다. 그녀는 자기 집 작은 방 벽면에 물기가 보이는데 ‘왜 안 고쳐 주냐’고 호통치면서 ‘경찰에 고발할 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차 안이라 제대로 들리지 않아 나중에 이야기 하자고 답변하기가 무섭게 욕설을 퍼붓는 아주머니.

 나 역시도 무척 화가 났다. 그 다음 날 집에 돌아온 나는 아주머니를 찾아 갔다. 왜! 욕설을 하냐고 따져 물으니 윗집에서는 무조건 총무에게 이야기하라고 말해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구 수가 적어 적립금 역시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를 부르는 것보다는 가급적 원인을 먼저 찾아 적은 비용으로 수리한다. 어느 주민은 당신 돈도 아닌데 아껴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냐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아껴서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노력한다. 총무를 그만 두겠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해해달라고 부탁해 이내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을 험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이 더불어 사는 공간에서 최소한의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겠기에 이를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내가 먼저’라는 이기심이 팽배해지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져 가는 아쉬운 마음에 ‘배려’가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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