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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우리 사회에 ‘폭행’이 너무 넓게 그리고 깊게 만연돼 있다. 그 유형도 다양하다. 군대 내에서 선임자가 후임자를 폭행하는 ‘군대 내 폭행’,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폭행하는 ‘가정 내 폭행’,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거나 학생이 학생을 폭행하는 ‘학교 내 폭행’, 직장 상사가 동료 또는 부하 직원을 폭행하는 ‘직장 내 폭행’ 등등이 그 예이다. 또 경찰서에서 수사관이 피의자를 폭행한 사례, 유아원에서 보모가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폭행한 사례, 요양원에서 간병인이 노인환자를 학대하고 폭행한 사례, 스포츠 선수단에서 운동선수를 폭행한 사례도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얼마 전엔 대학병원에서 선배의사들이 후배의사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악습이 있다는 사실이 뉴스에 보도돼 충격을 줬다. 또 최근에는 젊은 남녀 간에 자행되는 ‘데이트 폭행’이란 말까지도 생겨났다.

 왜 이토록 폭행이 만연돼 있는 것일까.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듯이, 유교적 전통하에서 어른은 훈육에 필요한 경우에 아이를 때려도 된다는 의식이 폭행에 관대한 사회풍속의 형성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일제 강점기, 군사독재시대, 급속한 산업화시대, 과도한 경쟁시대를 거치면서 사람이 사람에 대해 ‘잔학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 더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폭행은 ‘나쁜 짓’이며 엄연히 ‘범죄’이다. 형법 제260조 제1항은 "사람의 신체에 대해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폭행’을 ‘난폭한 행동’이라 설명하는데, 법적 의미에서 폭행죄의 ‘폭행’이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일체의 불법적인 유형력의 행사’를 말한다. 즉, 구타행위뿐만 아니라 가슴을 세차게 밀치는 행위, 팔을 갑자기 낚아채는 행위, 모발이나 수염을 자르는 행위도 폭행이 될 수 있다. 폭행을 당한 사람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극심한 모멸감 등 ‘정신적 고통’마저 당하게 된다. 때로는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훨씬 크고 깊어서 사람이 사람을 폭행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인격 살인’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힘센 자가 약한 자를 폭력·물리력에 의해 괴롭히는 사회는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짐승의 세계’를 용인하는 것이니 이는 인류애를 말살하는 것으로서 위법성이 매우 크다. "인간은 항상 목적으로서 존중돼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에는 존엄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라는 칸트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지난 19일 육군 22사단 소속 K(21) 일병이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아까운 젊은 생명이 병영 내 구타, 가혹행위로 또다시 희생된 것이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이후 육군이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반성과 엄정 수사 및 재발방지 대책, 유가족에 대한 사과 등은 전혀 논의하지 않고 오로지 언론 통제 등에 대해서만 논의했다고 한다. 수많은 병사들이 부대 내 폭행·가혹행위로 꽃다운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돼 왔건만 군의 대응태도는 늘 이런 식으로 사건의 은폐와 축소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다. 도대체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병사들, 사랑하는 우리의 아들과 동생들이 ‘적군’이 아닌 ‘아군’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인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적에 대한 대비태세는 사드(THAAD) 배치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전투력은 따뜻한 전우애에서 비롯되는 ‘사기’이다. 아군이 아군을 때려잡는 병영에서 어떻게 전우애와 사기가 생길 수 있겠는가? 문제가 있으면 이를 해결하는 것이 정부와 지휘관의 임무이다. 정부와 군의 수뇌부는 창군 이래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고질적인 ‘군대 내 폭행’을 방치할 것인가. 정녕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것일까.

 살 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대 내 폭행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폭행을 퇴치해야 한다. 가슴 속에 독풀처럼 자라난 ‘잔학한 마음’을 뽑아내고 ‘사랑의 마음’을 심자. 따뜻한 인정이 흐르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정이 많은 나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제발 폭행을 멈추고 인정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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