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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모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나이가 들수록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큰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현실에서는 왜 진실이 수용되기가 어려운 것일까?

 진실, 진리, 사실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는 단어이지만 모두 무게가 있는 단어이다. 얼마나 무게가 큰지를 살면서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은 주위의 편견과 오만으로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지막 생이 비참했던 산부인과 의사 제멜바이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1800년대 중반을 살았던 그 당시 아기를 낳다가 사망하는 산모가 많았던 시대이다. 그런데 그가 일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조산사가 분만을 돕는 곳과 의사가 분만을 돕는 곳의 사망률이 다른 것을 보고 사망을 줄이는데 무엇이 기여를 하는 것인지 관찰했다.

 조산사들이 분만을 돕는 곳은 의사들이 분만을 돕는 곳보다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산모들의 사망은 조산사들이 주도하는 곳이 적었다. 제멜바이스는 관찰한 결과 손씻기라는 결론을 냈는데 그 당시는 의사와 의과대학생들이 해부를 하고 환자를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손씻기가 환자를 보기 전에 필수로 하는 행동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양쪽의 차이는 손씻기 행동 하나만이 다르다는 것을 관찰했고 산모를 접촉하기 전에 염소 소독을 하고 난 후 모성사망이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그 이후 그는 관찰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손소독을 하도록 병동지침을 만들었고 학회에 발표를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감염을 일으키고 손씻기가 감염을 예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를 발표한 후에 의사들은 그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조산사보다도 분만 후 감염이 높고 그것으로 인해 모성사망이 높아지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도 그런데 그 당시의 분위기는 더 심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관찰과 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의사들이 얼마나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 했는지 제멜바이스를 왕따시켜서 나중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정말로 편견이 없는 과학자였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를 그가 관찰한 그대로 발표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용기 때문에 너무 큰 대가를 치른 사람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권위가 얼마나 사기성이 있는 것인지도 보여준다. 집단이 인정하지 못하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용기를 가져야 하는 일인지를 알려 주고 있다.

 이 일은 180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현재도 드라마처럼 일어나고 있다. 1900년대를 지나면서 인간이 인간답게 그리고 억울한 일이 없도록 노력해도 억울한 일은 지금도 생긴다.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는 사람들도 무기력을 함께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사소한 일에서 용기와 소신 있는 사람들도 본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손씻기를 혁명적으로 주장한 제멜바이스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예상 외로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가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싶으며 사실을 밝히는 것에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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