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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 교수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그 기본 내용을 담은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제노동기구(ILO)가 2010년부터 제기한 논리다. 임금을 중심으로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가계의 소비가 증대되고 이는 기업의 투자 확대로 이어져 경제성장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본격화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대규모 공공일자리를 만들고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렸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유도하며 재원마련을 위해 부자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이후 10년 동안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내우외환을 겪으며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급기야 우리 경제가 최대로 달성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의 경우, 2000년대 초 5% 정도였던 것이 최근에는 3% 이하로 추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성장 방식으로는 성장률 반등을 가져올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서 분배 정의를 강화하면서 성장률을 다시 3%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들고 나온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는 적어도 두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소득주도 성장이란 것은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경제성장보다는 단기적인 경기순환에 대처하는 성격이 강하다. 임금인상을 통해 소비를 자극한다는 것은 불경기를 탈출하는 수단이지 혁신을 유도해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에 이 방식은 정부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그쳐야 하는 정책이다. 정부가 세금을 늘려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늘리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그것이 지속될 경우에는 재정파탄만이 기다린다.

 소득주도 성장이 갖는 또 하나의 한계는 그 효과 자체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소득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소득상승이 충분한 소비증가로 이어져야 한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의하면, 한국인의 씀씀이는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 불황 당시보다 더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구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 가운데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인 평균소비성향의 경우, 최근 한국은 해마다 최저 기록을 경신하며 지난해 4분기에는 69.7%로 처음으로 60%대로 내려갔다. 이는 일본의 평균소비성향이 최악이었던 1998년(71.2%) 당시보다도 더 낮은 수치이다.

 이렇게 소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정부의 도움으로 일부 계층의 소득이 오른다고 해서 전체 가계소비가 오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장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결국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나 급격한 고령화 등의 구조적인 소비제약 요인으로 인해, 소득의 증가가 충분한 소비의 증대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소득주도 성장을 실제로 성공시킨 나라는 없다. 이 모델에 근접했던 것이 그리스와 남미다. 국민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현금을 나눠준 이 실험은 국가파산으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일본 사례를 들며 이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착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포함 근로자 소득을 늘려주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경제가 좋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임금 인상 때문에 미국경제가 성장한 게 아니라 성장했기 때문에 임금이 오른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 아베 총리는 시장에 엄청난 돈을 풀며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성공했다. 그러자 아베는 민간기업들에게 근로자 임금을 올려줄 것을 주문했으나 기업들은 잘 호응하지 않았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일본이 장기 불황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경기가 좋아지자 정부가 임금 인상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혁신성장’을 새로운 정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이 뜨겁지 않다. 그것은 이 정책이 과거 정부에서의 그것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장에서의 기술혁신에 방점을 둬야 할 성장담론의 자리를 이미 소득주도 성장이 차지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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