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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지난 6월 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100년 전 당시 러시아제국의 수도였던 바로 이 도시에서 러시아혁명이 시작됐다. 비교경제학을 연구하는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및 한국의 비교경제학회들이 모여 세계비교경제학대회(World Congress of Comparative Economics; WCCE)를 2년 전 로마에서 개최한 이후 두 번째 대회를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하게 됐다. 나는 한국비교경제학회를 대표해 참석했는데 다음 번 3회 대회를 2021년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에 공식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비교경제학은 과거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비교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였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가 수립된 것은 100년 전 러시아혁명의 성공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1991년 12월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비교경제학의 분석 대상인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사실상 소멸하면서부터 비교경제학의 학문적 위상이 흔들리게 됐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회가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 대회의 주요 세션 중 하나가 향후 비교경제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논의의 공감대는 과거 체제(system) 중심의 연구에서 제도(institution)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에 모아졌다. 동시에 체제의 개념을 과거처럼 소유 형태와 자원배분 방식이라는 이원적 기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기준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기조연설 중 하나인 버클리대 제라르 롤랑 교수가 발표한 세계 경제체제 분석의 장기적 역사분석 시도도 향후 비교경제학이 나아갈 방향을 시사하는 실험적 연구라 할 수 있다. 체제를 국가에 의한 중앙집권적 의사 결정 방식과 시장에 의한 분권적 의사 결정 방식으로 단순화해 이를 고대문명 발생 시기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이면서 지역적인 분석을 병행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체 500편 정도의 논문이 발표됐는데 비교경제학보다는 경제학 일반에 가까운 논문이 대다수였다는 것이다.

 러시아경제를 전공한 학자로서 여러 번 러시아를 다녀왔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만해도 연구년을 비롯해 여러 기회로 자주 방문한 도시이다. 이번 방문 얼마 전에 이 도시에서 푸틴 대통령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 사건이 있었다. 내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대륙 간 축구대회인 컨페더레이션컵대회가 열리면서 시내 치안이 강화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크림반도 병합으로 서방의 제재가 진행 중인 나라이다. 경제 상황도 안 좋고 해서인지 몰라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경직되고 가라앉아 보였다. 이번에 묵은 곳이 에어비앤비로 찾은 시내 도심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였다. 밤마다 러시아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하고 거리낌 없는 각종 춤이나 공연 등을 보면서 러시아의 미래가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내에서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다른 옛 소련 공화국과는 달리 러시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역사적이고 문화적 고리가 있다. 10세기에 러시아 최초의 나라인 키예프 공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수립됐고 몽골의 침략 이후에 나라의 중심이 지금의 모스크바로 옮겨가기 전까지 400∼500년간 러시아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1991년 12월 소연방 해체 이후 독립하기는 했지만 친러시아 정권이 유지되다가 2013년 12월 친서방 세력에 의한 정부 전복이 성공하면서 결국 러시아의 개입을 불러오게 된다. 우크라이나 자체가 동쪽은 러시아정교로 친러시아 성향이고 서쪽은 가톨릭이면서 친서방 성향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유럽연합에 가입시키려는 친서방세력의 주장은 마치 과거 신라가 있던 경상도를 일본에 합병시키자는 주장만큼 과격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국가의 역할과 권한을 강조하는 소위 국가자본주의와 러시아 정교에 바탕을 둔 슬라브 민족주의를 국가발전의 기본 방향으로 내세우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의 국가전략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걸맞은 국가 발전 방향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난 20세기 대표적인 사건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각각 러시아혁명과 소연방의 해체라는 세기 전환기의 한 조사 결과가 있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러시아의 변화는 동북아의 이웃인 우리에게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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