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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입추 이틀 전인 엊그제 5일에는 경남 창녕의 낮 최고 기온이 무려 39.4도까지 올라갔다. 지난 7월 13일 경북 경주의 39.7도 다음으로 높았던 기록이라고 한다. 그날 인천도 무덥기는 했지만 창녕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편인 34도에 머물렀다. 천기만큼은 인천이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양호한 편이라는데, 과거 혹서와 관련해서는 인천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한번 살펴본다.

 1930년 8월 4일자 조선중앙일보를 보면 ‘작금 혹서 습래(襲來)! 섭씨 32도대 돌파’라는 제하에 "한난계(寒暖計) 수은주(水銀柱)는 작금 량일간 섭씨(攝氏) 32도를 오르나리게 되어 사람사람이 모다 무덥고 안타가운 호흡을 하고 잇다"는 기사의 서두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 서울의 ‘염열(炎熱)이 3∼4일은 더 계속’되리라는 경성측후소의 ‘말’을 빌려 이대로 "기온이 매일 조금씩 올라가면 작년 8월 5, 6일경의 최고 기온 33도를 넘어 35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더위에는 농작물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인천에 있던 총독부관측소(總督府觀測所)는 이 같은 혹서의 원인을 ‘기압 배치가 불안정한 탓’이라며 "일본해안(日本海岸)은 고긔압이 몰려 잇서 가지고 청천(晴天)을 계속하고 중국 방면에는 저긔압이 몰려 날이 흐려 잇는 바 그 중간의 조선은 긔압의 배치를 안정하고 혹서가 계속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흔히 접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니 하는 기상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짜 중외일보는 전날인 8월 3일 서울의 피서객 상황을 전하고 있다. ‘폭서를 피하야 인천에 7천여 명’이라는 제목의 2면 1단 기사를 싣고 있는데, 이날이 "8월의 첫 공일로 각 관청, 회사, 상점이 모조리 공휴였던 까닭에 서늘한 물을 찾아가는 사람이 부쩍 몰렸다" 라며 이날 오전 경성, 용산 두 역(驛)에서 발매된 인천행 승차권의 집계를 특필하고 있는 것이다.

 기사 내용을 보면 "3일 정오까지 경성역에서 4천500여 매, 용산역에서 약 1천200여 매를 팔아 금년 최고의 기록을 지었으며, 오후 들어서도 상당수 서울시민이 인천으로 가게 되어 있어 인천행 여객수는 이날 하루 총 7천여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이날 낮, 당시 서울시민의 대표적 피서지인 한강인도교 아래에 1만여 명의 수영 인파가 모이기는 했어도,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월미도유원지 외에도 해수욕장으로 이름난 영종도 해변, 만석동 해안이 7천여 명에 이르는 서울시민을 대거 인천으로 유인했을 것이다.

 1939년 7월 21일자 동아일보는 인천 부평의 수도관 파열을 보도한다. "무쇠라도 녹일 듯한 작금 염제(炎帝)의 폭위에는 수로의 철관마저 비명을 올리고 U자형의 개소가 파렬하엿다"는 내용이다. 그 원문을 좀 더 옮겨 보면 "폭등하는 맹염으로 물 사용량은 날로 증가되고 잇는 터이거니와 인천부민에게 이 음료수를 공급하여 주는 수원지(水源池)로부터의 통수 철관 부평 일본자동차공장 부근 부평(富平) U자형의 개소가 17일 정오경 폭염으로 드디어 부푸러저서 폭음과 함께 파렬하엿다"는 것이다. 정말 더위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서울의 기온이 34.9도, 인천이 32도였던 지난 7월 20일, 금년 들어 첫 폭염을 기록했던 날과 수도 철관이 파열한 78년 전 당시의 날짜가 비슷하게 들어맞기는 한다.

 이 사건이 있고 열흘 남짓 후인 8월 2일자 기사는 참담하다. 살인적인 혹서 때문에 "인천부내의 사망자는 격증하야 매일 평균 7, 8명, 심하면 15∼16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7월 1일부터 20일까지 무려 160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더위에 저항력이 떨어지는 유아와 노인이었다는 것이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나쁜 영양 상태가 폭염과 더해져 사망자 수를 이렇게 크게 늘렸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름철은 무덥기 마련이지만 이 기사들을 보면 오늘날 혹서기 기온이 80∼90년 전보다는 분명 상승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인천의 기온도 역시 올랐을 것이다. 천기만큼은 전국 어느 지역보다 양호했던 인천도 머잖아 펄펄 끓어 넘치는 ‘염천시(炎川市)’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운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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