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행정학박사.jpg
▲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요즘 곳곳에서 벌어지는 갑질 논란 뉴스를 보면서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 간에, 심지어는 장성과 사병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갑을관계가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접하면서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즐겁게 일할 수 없을 겁니다. 즐거워야 일의 결과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즐거운 분위기가 조성된 부서의 사업 실적이 이전과 비교해 20~30%가량 향상됐다고 하고, 심장병동에서 즐겁게 일하는 간호사들이 있는 곳의 환자 사망률이 다른 병원에 비해 무려 4배나 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은 주인이고, 을은 노예와 다름없는 갑을관계 속에서의 ‘을’은 인격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존재처럼 살아야 할 겁니다. 이렇게 대다수 사회적 약자들인 ‘을’의 삶은 그야말로 절망 속에서 살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갑을’의 관계가 아니라 ‘갑갑’의 관계로 말이지요. 갑갑의 관계란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관계일 겁니다. 누구나 자신이 귀하게 여겨지고 있다고 느낄 때 살맛이 날 것이고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겁니다.

 미국 농촌의 작은 마을에 큰 걱정거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가뭄이 너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작은 예배당에 가서 매일 비를 달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맨 앞줄에 어린 소녀 하나가 앉아 있곤 했는데, 소녀의 곁에는 어김없이 빨간 우산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혹시 비가 올지 몰라 늘 우산을 가져왔던 겁니다.

 어린 소녀의 빨간 우산을 통해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꿈이 ‘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농사를 위해 비를 달라고 기도했지만, 농사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소녀는 마을 사람 모두가 비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가 와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렇게 꿈은 나와 너 모두에게 유익함을 주는 ‘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지혜는 꿈이 그렇게 ‘선한’ 것일 때는 그 꿈을 이루어나갈 때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과정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느 학자는 꿈을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뤄졌을 때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되고자 한 그것이 이뤄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할까를 상상해본다면, 그 꿈은 ‘이타적’인 것이 되겠지요. 꿈이 이렇게 이타적인 것이라면, 그 꿈을 향하는 힘든 ‘과정’까지도 기꺼이 즐겁게 수용하게 될 겁니다.

 세 번째 지혜는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언젠가 내릴지 모를 비를 대비해 빨간 우산을 지니고 다니는 소녀처럼 말입니다. 갑질 논란이 불거진 탓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희망을 가질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행태가 하루 이틀 만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거겠지요. 그래서 지금 이 고약한 행태를 바꿀 수 있는 너무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법과 제도를 고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나는 과연 갑질을 하고 있지 않나?’를 자문해보는 성찰의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문득 빨간 우산을 펴들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던 비를 맞이하는 그 고운 소녀가 떠오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너와 나 모두에게 유익함을 주는 꿈을 꾸라고, 그리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힘들어도 즐겁게 견뎌내라고 빨간 우산 속 소녀가 외치는 듯합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