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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 현장은 무척 조용하다. 더욱이 선생님들의 노동조합은 더 없이 행복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정기관의 눈치 보지 않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루한 이념 투쟁과 조직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원노조법에 따라 노조 해직 교원이 교직원노조에 가입할 수 없어 대법원 1, 2심의 판단을 뒤집기 위해 교사를 대상으로 서면 운동을 벌이고 또한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법외노조 철회 노숙 농성으로 촛불시위로 탄생한 새 정부에 부담을 주는 교육 본연의 자리를 벗어난 투쟁이 또다시 사회에 충격을 주는 정도이다.

 새로운 정부는 교육현장에서 전임 정부에서 시행하던 각종 시책을 폐기하고 또 다른 교육정책을 시작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에서 무엇보다 교수와 학습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수다. 저비용의 보편적인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등의 창의적인 기술이 차세대 혹은 그 다음 세대의 환경을 완전히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에서 교수(가르침)와 학습(배움)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2050년에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직업의 50%가 기술적 실업에 도달할 것이라고 미래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창의적인 기술의 발전은 현재의 대부분 반복적 노동을 대체할 것이므로 교수와 학습은 창의성, 문제 해결, 기업가 정신, 관용, 공감, 지능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사회적 요구에 따라가다 보면 교육의 수준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교수와 학습의 개선 속도는 느리게 움직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창의성이 길러지는가에 대해 정권이 5년마다 정책의 변화와 학교에서 단편적인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으나 창의성이 갑자기 나타나기는 어렵다.

 창의성은 타고 나기도 하지만 성장과정과 특히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수와 학습 과정에서 여러 요인이 상호 작용해 발현되는 것이다.

 부모들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원한다. 자녀의 꿈은 무엇이고, 재능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울 것인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역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세부 사항을 실천하도록 다그친다. 말로는 학교 현장에 맞춤형이라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엄중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엄중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잘못된 정책으로 여론이 나빠지거나 여의치 못할 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없을 때 내놓는 국가 권력의 대표적인 갑질 단골 메뉴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많은 학습을 하고자 하지만 점차 권력화해 정권에 따라 시위와 투쟁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권을 볼모로 단체 연가투쟁 등을 하며 선생님들에게 더 편한 근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 결코 창의적인 교육의 시작은 아니다.

 창의성은 학교별로 교육과정에 목표를 세우고 선생님과 학생이 교수와 학습에서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길러진다. 각급 하교에서 자율적으로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소통하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만들어가는 단위 학교별 특성화된 교육 풍토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할 때 학생들의 창의성이 싹 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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