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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 정의한다. 지금까지 경제 개발이나 도시 건설 같은 하드웨어적 발전에 주력해 왔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로서 각 나라마다의 특색 있는 고유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시대적 트렌드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전반을 지칭해 ‘한류’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따라서 각 나라 혹은 각 도시 발전의 척도는 유무형의 역사 문화자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보존하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인천은 2017년 300만 인구와 함께 ‘인천 가치 재창조’와 ‘주권시대’구현을 지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천의 이미지를 물어보면, 항구, 도크, 바다, 짠물, 철도 등을 이야기한다. 또 오랫동안 익살스럽게 회자되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곱뿌(컵)없이는 못 마신다’거나 ‘인천은 몰라도 월미도는 안다’ 라는 표현을 통해 한국 최초의 사례를 지닌 사이다와 월미도를 언급한다. 혹자는 인천 개항, 맥아더장군 동상, 인천상륙작전,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등 가까운 시기에 있었던 사실들을 말한다.

 모두 인천을 나름대로 설명하는 표현들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은 130여 년 근현대사의 족적을 나타낼 뿐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인천은 B.C.18년 비류 백제의 도읍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030여 년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개항과 더불어 서구 열강의 치열한 이권 다툼의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도시로 조성되면서 군수기지와 공업화의 첨병 역할을 했다. 또 광복 후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공간이었고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최일선에서 개발에 따른 희생을 감내했던 곳이다. 인천에는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산업화 속에 도시발전의 외형은 확대되어 오늘날 8대 도시 중 제1의 면적을 가진 도시로 성장하였지만, 인천만의 특색을 온존시킬 수 있는 기회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인천 가치 재창조’의 기치는 교육의 현장뿐만 아니라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기업에서도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 방향은 그 지역 기업의 발전 방향과도 연결된다. 문화운동의 한 부분에 기업 메세나가 있듯이 향토기업이 그 도시의 주민과 소통하고 친화적인 기업으로 인식될 때 지역에 대한 이해도와 기여도는 물론, 직원들의 만족도가 클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업의 발전과 확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점에, 인천 역사를 탐구하려는 향토기업의 실천 사례가 있다. ‘SK인천석유화학’이 진행하는 인천 바로 알기 역사 동아리 활동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50여 년 전인 1969년 대한민국 산업화를 위해 조성되었던 경인에너지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원유정제시설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시절, 황량한 불모지에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인천에 세워진 정유공장이 경인에너지다. 이후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2013년 7월 ‘SK인천석유화학’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최근 570여 명의 직원들이 향토기업으로서의 자긍심을 인천 역사를 바로 알자는 캠페인과 역사 동아리 모임, 그리고 지역 인사 초청 역사 강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지금까지 인천 지역 기업의 사회공헌과 소통은 여러 방식으로 행해져 왔지만 인천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려는 노력은 처음 시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날 대한민국과 인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기업이 50여 년이 지난 지금, 기업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토의 역사문화에서 찾고 있다. 인천의 ‘주권’을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보다 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새로운 운영의 틀을 인천의 역사문화에서 찾았으면 한다. 인천은 근현대 산업도시이기도 하지만, 2030여 년 오랜 연원을 가진 ‘역사문화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미래를 향한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잠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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