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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여름방학 중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Bosnia-Herzegovina, 통상 보스니아라고 불림)를 방문하게 된 나는, 사라예보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스타리모스트’에서 1995년 초로 플래시백(Flashback)하고 있었다.

 잔인한 ‘보스니아 내전’ 사태는 그해 가을 즈음 종결됐고, 청운대학교(1995년 3월 개교)로 부임한 나는 하루가 짧다고 느끼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국제 뉴스는 보스니아라는 글자를 빼놓지 않았었고 ‘인종청소(ethnic cleansing)’같은 단어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외국 잡지들은 처참한 사진들로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서 있었던 스타리모스트는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폭격으로 무너졌다가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2004년 재건축돼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됐다.

 이 다리 위에서 나를 20여 년 전으로 되돌린 것은 다리의 아름다움과 다리가 다시 완성됐을 때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영국의 찰스 황태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이 참석해 잔인한 전쟁을 다시는 잊지 말자고 다짐했던 ‘Don’t Forget 93’이라는 푯말 때문이 아니었다. 서로 증오와 분노로 폭파했던 이 다리 옆에서 팔고 있는 ‘탄피 볼펜’ 때문이었다. 탄피 두 개로 연결된 볼펜의 모습은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고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나는 전쟁 중 불발탄이나 위험물을 발견하면 군부대나 학교에 신고하라는 교육을 받았다. 가끔 불발탄을 갖고 놀던 아이들은 총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큰 상해를 입기도 했었다. 스타리모스트 다리 옆 다닥다닥 붙은 상점에서는 주워 모은 탄피들로 볼펜이나 권총 모양을 만들어 기념품으로 팔고 있었다. 그러나 이 탄피들이 강 건너 이웃을 죽이고 저 벽면을 마마(마마)자국처럼 만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기념품으로 사기에는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상점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었고,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도 20여 년 전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보스니아는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이슬람계에서 대통령을 셋이나 내세워 위원회를 만들고 8개월씩 대통령을 돌아가며 하고 있다니 아직도 갈등과 전쟁의 불씨가 꺼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고 보면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문명의 충돌」에서 이야기한 문명 간의 충돌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충돌은 서로의 작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가톨릭이나 그리스 정교나 이슬람은 모두 구약성경을 사용하고 있고, 보스니아와 이웃나라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슬라브족으로 서로 간의 싱크로율이 95%를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이 다리 밑을 흐르는 네레트바강을 사이에 두고 오랜 세월 오순도순 살아오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하면서 가장 잔인한 전쟁을 벌여 왔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다리마저 폭파했던 것이다.

 한반도로 눈을 돌려보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ICBM으로 핵무장하고 미국과 남한을 위협하고 있고, 미국은 북한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뉴저지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전쟁을 막아보겠다고 애처롭게 북한과 미국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핵구름 위에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올려놓은 사진을 싣고 핵전쟁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제목을 달고 있다.

 발칸(산이 많아 푸르다)반도의 슬픈 이야기가 있는 스타리모스트 다리 위에서 불안한 한반도(금수강산)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프로이트는 「왜, 전쟁인가?」에서 좋은 마음의 감정적 교류가 전쟁을 막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아직 그 길은 요원(遙遠)해 보이고 지금은 핵을 쥐고 골프장에서 크게 말할 수 있는 힘(power)이 있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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