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주어진 시간이 약 20일 정도 됐습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내가 이렇게 어마어마한 시간과 역사를 축적한 무게를 어떻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이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됐습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내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최선을 다해 시도하게 됐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월요일에 만나는 문화인’의 주인공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설치되는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의 제작을 맡은 이원석(50)조각가다. 지난 12일 인천 부평공원에서 열린 ‘2017 인천평화축제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의 작품 ‘해방의 예감’은 일본 제국주의 당시 일본 육군에 의해 건설된 남한 최대 규모의 병기창인 ‘조병창(부평공원 일대)’을 중심으로 자행된 인권유린과 징용, 노동 착취, 그리고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해방을 주제로 제작된 작품이다.

홍익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이 작가는 부산 ‘평화의 소녀상’ 등을 제작·설치했고, 서울시립대를 비롯해 경희대, 중앙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자료를 공부하고, 책과 인터넷을 통해 조사하면서 ‘조병창’의 성격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조병창’을 경험했던 지영례(89·여)님과 고(故) 이연형 님의 사연을 듣게 됐고, 이를 모티브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영례 님은 일본군의 위안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조병창에 들어가 노동을 하게 됐고, 이연형 님은 조병창에서 일하면서 조선독립당 활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어요. 이 같은 자료들은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조선 노동자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조병창에 어떤 성격을 지을 것인지가 핵심인 상황에서 이 사람들의 갈망과 의지를 담아내자는 생각이 들었죠."

작품 ‘해방의 예감’은 전체 규모가 가로 4m, 세로 3m, 높이 2m로 바닥과 벽은 화강석, 인물상과 부조는 청동으로 제작됐다.

작품에는 세 가지의 중요 코드가 있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 코드는 시선입니다. 작품에서 두 분은 부녀의 배역을 하는 연극배우처럼 하나의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이 직접 겪은 육체적·심리적 상황을 표현하며 정지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중앙에 있지도, 마주 보지도 않습니다. 뒤쪽을 바라보는 소녀는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던 인권유린과 그 경험으로 인한 정서적 불안, 초조, 긴장 등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편을 바라보는 이연형 님은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 점점 공습은 강화되고 일제강점기 말 불안해하는 일본군의 행동을 통해 무언가 미래가 변화될 것 같은 느낌을 지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과정과 경험은 전혀 다른 삶이지만, 한 무대에 올림으로 해서 그 확장된 이야기들을 역사의 무게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선으로 처리하게 됐습니다."

또한 인물상을 오른쪽에 치우쳐 배치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설정해 나름대로의 긴장감을 주도록 했다.

이 작가는 "우리가 이 작업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아픈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되새길 수 있고, 우리가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반복되지 않게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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