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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태국 여행을 반복하는 동안 평생 잊지 못할 추억 거리를 안겨준 것은 첫 번째 이후 7년 만에 다시 찾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아내는 이슬람의 수상 식당에서의 싱싱한 바닷가재와 바이킹 제비 동굴에서 채취한 제비집 요리를 즐겼던 ‘푸켓’에서의 낭만을 잊을 수 없다며 잠꼬대를 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처음 여행은 우리 부부 둘뿐이었지만 두 번째에는 여섯 살 늦둥이 딸을 동반했다. 태국 여행 때마다 공통점은 병치레였다. 첫 번 여행 때는 낮에 빙과류를 많이 먹은 것이 탈이 나 귀국 전날 짐을 챙기는 아내 옆에서 심한 복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의사의 왕진을 청했었는데 두 번째 여행엔 늦둥이 딸이 신음을 토하며 신열을 앓았다.

 한국에서 출발 전부터 소화불량과 미열 증상이 있었던 어린것이 야간 비행 중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더 악화된 듯싶었다. 이튿날, 35도가 넘는 뙤약볕을 받으며 강행군을 하던 우리는 결국 중도에 일정을 멈춰야 했다. 혼자 몸으로도 열대지방 관광이 힘에 벅찬 약체질의 아내가 여섯 살배기 딸을 업고 에메랄드 사원과 왕궁을 관광을 해야 하니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왕궁 안 도로변에 주저앉아 기진맥진한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에 관광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측은한 눈길을 보낸다. 가이드는 다른 관광은 생략해도 태국 관광청에서 지시한 진주 보석상 관광은 생략할 수 없다며 강행을 한다.

 신명이 나서 입을 다물 줄 몰랐어야 했을 딸아이는 태국 전통 보트를 타고 방콕 시내 관광을 하는 중에도 두 눈을 감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가이드의 노력으로 우리는 예정보다 2시간 앞서 ‘푸켓’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한숨을 내쉬는 딸아이를 꼭 안은 아내는 목적지에 착륙할 때까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7년 전 낭만 어린 추억을 더듬으려 재촉한 여행이 오히려 딸에게 화를 자초했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리라.

 그날 밤, 우리 부부는 가이드의 선택 관광 유혹을 뿌리친 채 밤새워 딸의 병간호에 몰두했다. 감기약을 미리 조제해 갔지만 차도가 없어 물수건으로 해열시키는 방법을 병행했다. 이것마저 효과가 없으면 급성 폐렴으로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 귀국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이니 마음껏 포식하려고 구입한 태국 과일의 여왕이라는 ‘망고스틴’조차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새벽이 되자 늦둥이 딸의 열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면서도 관광을 재촉했다. 신기한 일이라기보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피’섬으로 항해하는 선실에서 아내와 딸아이가 지난밤 설친 잠을 보충하는 동안 가이드와 갑판으로 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맑은 공기를 한껏 마셨다. 인천 앞바다에서 유람선을 탔을 때 느끼지 못했던 동남아 열대풍과 초록빛 바닷물은 이국의 정취를 실감나게 해 주었다. 여객선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어젯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한 모녀는 한층 밝은 얼굴로 야자수가 우거진 해변에 발을 디뎠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나면 아이들의 감기 증상이 더 악화되는 전례와 달리 딸아이는 물놀이를 즐기고도 탈이 없었다. 소원했던 제비 동굴 관광을 마친 후 ‘팡아’만을 향하는 보트에서 멀리 이슬람의 수상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아내는 흥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바닷가재 요리를 즐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날 무렵 식당 종업원은 커다란 대접에 보리차 같은 물을 담아 왔다. 숭늉이려니 생각하고 밥그릇으로 퍼 마시려는 순간 가이드는 깜짝 놀라 내 손을 잡는다. 대접에 떠온 물은 보리차도 숭늉도 아닌 바닷가재를 만졌던 손을 씻는 세숫물이라는 설명에 우리는 박장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의 출발을 후회하며 딸아이의 병세가 악화되면 첫날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가려고 할 만치 불안했던 여행은 다행스럽게 유종의 미를 거두며 우리 가족의 가슴 한 모퉁이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을 남겨 놓았다. 준비해 간 응급약품으로도 불가능했던 병치레 진료비는 귀국 후 여행 보험으로 환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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