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이민이 시작된 도시이다. 1902년 12월 22일 121명이 인천을 출발하는 갤릭호에 실려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이민을 떠난 것이 우리나라 근대이민의 효시다. 인천시는 2008년 이를 기념하고 인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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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이보다 40여 년 앞선 시기에 살기 위해 연해주로 떠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잇단 기근과 학정으로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1864년에 일어난 대흉작은 몇 년째 계속돼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고, 관리들의 폭압은 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이렇게 법적 보호 없이 국민이 생존을 위해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유민이라 한다. 이 당시 우리나라를 떠나는 유민의 규모가 계속 늘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연해주에 정착한 유민들은 우리 민족 특유의 근면함으로 황무지를 개척해 점차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의 소수민족 이주정책으로 1937년 9월 그동안 이뤘던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150년이 넘는 세월과 정치적 격변으로 고려인들은 국내에 연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국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40만여 명의 고려인과 대한민국 사이에 끈이 만들어진 데에는 재외동포재단의 힘이 컸다. 재외동포재단은 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한민족을 하나로 엮는 네트워크 형성과 한인의 정체성 함양, 차세대 인재 육성을 위한 재외동포 교육지원 강화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인천재능대학교는 2014년부터 3년째 재외동포재단이 주관하는 러시아·CIS지역 재외동포 차세대 초청 직업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2015년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10명으로 시작된 이 연수는 2016년부터는 러시아·CIS지역 재외동포로 확대됐다. 2016년 36명에 이어 7월 3일부터 9월 22일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되는 올 연수에는 총 7개국 44명이 참가하고 있다. 연수과정은 직업교육과 한국어교육, 산업체 체험, 한국문화 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직업교육은 연수생의 소질과 희망에 따라 2개 과정(한식, 뷰티)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특히 올해는 앞서 실시된 연수의 경험을 살려 한식과정은 초반과 중급반으로 나눠 수준별 맞춤 교육이 진행되며, 뷰티케어는 심화과정을 통해 네일케어와 스킨케어 기법을 배우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이 고려인 동포들에게 한민족 정체성을 심어주고, 직업교육을 통한 주류 사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여러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연수 후 우즈베키스탄의 유명 레스토랑 총주방장, 블라디보스토크 미용실 디자이너로 취업했다고 한다. 이르쿠츠크에서 일본식 초밥요리사로 활동하다 연수에 참여했던 연수생은 귀국 후 한식당을 개업했다. 그리고 한 연수생은 연수 중 한국어 실력을 키워 내년에는 정부장학생으로 국내 대학으로 유학할 예정이고, 작년에 연수에 참여했던 오빠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여동생에게 연수를 권해 현재 메이크업을 배우는 사례도 있다.

 연수생들이 러시아·CIS를 떠나 긴 비행기 여행을 마치고 대하는 조국의 첫 모습은 인천대교 너머로 보이는 송도 신도시라 한다.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를 보면서 느끼는 조국의 발전상을 통해 경이로움마저 갖게 된다고도 한다. 이민이 시작된 인천에서 기근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야 했던 고려인 후손들에게 먹거리를 찾아주는 직업교육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려인 후손에 대한 직업연수에 대한 입소문이 이어져 러시아와 CIS 지역 고려인 동포 사이에는 인천과 인천재능대가 알려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제에게 나라를 잃었을 때 연해주 고려인들의 도움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고려인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이민이 시작된 인천이 차세대 재외동포의 미래를 견인하는 도시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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