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의 유년시절을 되돌아보면 달걀은 꽤나 귀한 음식이었다. 몸에 좋은 영양소가 많다고 해도 하루 한 알씩 섭취하는 게 요즘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과 30년 만에 달걀은 간편하게 조리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일상적인 식재료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가격이 치솟는가 하면, 살충제 파문으로 순식간에 기피 대상이 되었다. 살충제 논란의 원인 중 하나로 공장형 축사가 지적되고 있는데, 자연 방목 상태의 닭들은 진드기 발생 시 흙 목욕을 통해 청결을 유지하는 데 반해 좁은 축사에서 태어나 앉은 자리 그대로가 생활반경의 전부인 닭들은 살충제를 통해 진드기를 제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맛과 영양 보충을 위해 손쉽게 찾았던 수많은 달걀 뒤에는 동물도 인간도 행복할 수 없는 환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농축산물에 대한 관리·생산을 비판하기에 앞서 저렴한 가격을 긍정하며 손쉽게 구매하려 했던 우리의 안일했던 태도도 돌아보게 한다. 오늘은 소개하는 영화 ‘옥자’는 식문화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재고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녀 미자에게는 10년 지기 친구가 있다. 4살 때 처음 만난 ‘옥자’는 희로애락을 함께 한 가족과도 같았다. 옥자로 말할 것 같으면, 활발한 신진대사로 키는 2.4m에 몸무게는 6t이 넘는 엄청난 체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실 옥자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유전자조작(GMO) 인공돼지로 조만간 소시지·베이컨·삼겹살 등으로 분해, 가공돼 식탁에 오를 예정이다.

GMO 슈퍼돼지를 개발한 글로벌 그룹 ‘미란도’는 유전자조작 음식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 사실을 숨긴 채 거대한 슈퍼돼지를 세계 곳곳 청정 환경에서 안전하게 사육하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결국 잘 자란 슈퍼돼지 옥자는 도축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옮겨지고, 이를 용납할 수 없는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여기에 동물해방단체인 ALF도 개입하게 되는데, 미자는 옥자와 행복한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영화 ‘옥자’는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신작으로, 자본과 신념이라는 양 진영의 갈등과 함께 침해 당한 행복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외로운 소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중 단연코 눈에 띄는 것은 슈퍼돼지 ‘옥자’의 운명이다.

극 중 배우 변희봉이 연기한 미자의 할아버지는 옥자의 타고난 팔자는 고기가 돼 식탁에 오르는 것이라며 흥분한 손녀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미자와 옥자 사이에 친밀도를 제외하고 보더라도 돼지가 가공식품이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싼 가격에 유통시키기 위해 유전자조작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을 ‘선의의 거짓말’이라 포장하는 기업의 입장도, 삶의 모든 과정이 오로지 먹거리가 되기 위해 잔혹하게 통제되고 관리된 채 살아가다 끝내 처참하게 분해되는 가축의 모습은 어디를 보더라도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렇다고 채식주의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본의 논리와 맛의 쾌락을 위해 인위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동물에 대한 생명권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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