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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이 세상에 경쟁이 없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생태계에도 상대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심은 발붙일 수 없으며 먹고 먹히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생존 경쟁만이 존재한다. 그나마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만이 일정한 룰과 규칙으로 불가피한 경쟁을 조절하고 조정할 뿐이다.

 경쟁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고 본능적인 욕망이다.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집단이나 남보다 앞서려는 개인의 과도한 시도가 종종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정성과 투명성만 보장된다면 경쟁은 생산적이고 활력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실제로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평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이 남이 잘되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풍조가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 더욱 노골적으로 팽배해 왔다.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경쟁의 부정적인 측면이 확대되고 부풀려져 온 것이 사실이다. 중등교사 자격을 획득하는데 필요한 교원 임용시험은 경쟁은 치열하지만 그 과정과 방식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못지 않게 객관적이고 공정하다.

 현재의 교원임용시험은 학벌이나 스펙, 집안 배경과 무관하게 오로지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그 결과에 책임지는 제도이다. 학원에서 암기해서 보는 시험이라고 물정 모르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시험문제가 예전과 달리 외워서 답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경쟁률도 높지만 시험 문제도 과거와 달리 융합적이어서 무척 어렵고 까다롭다.

그런 시험과 경쟁 과정을 무시하고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 교사로 채용하려는 정부의 입장에 파열음이 들린다. 공공부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대통령 1호 지시에 따라 급기야 교원 임용에도 이 계획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교사가 좋은 일자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새 정부의 100대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인 좋은 일자리 창출과 기간제 교사를 엄격한 임용 절차 없이 정규직 교사로 전환시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경쟁이 초래하는 역기능 때문에 선제적으로 경쟁을 제한하기보다 불공정한 경쟁을 사전에 막는 것이 더 우선이다. 국가는 개개인에게 결과적 평등이 아닌 과정적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 이 과정적 평등 위에서 비로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 물론 이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새 정부는 5년 임기의 한시적 민주정부임을 명심해야 한다. 제한적인 시간 동안 우리 사회의 모든 적폐를 일시에 개혁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과욕이다. 개혁은 과속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개혁은 방향을 잃거나 목적지를 지나쳐 엉뚱한 곳을 지향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것과 개혁 과정이 정상적인 것과는 무관하다. 역대 정권은 개혁 정책으로 지지율을 높이고 정치 비리와 경기 침체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하나회 숙청, 공직자 재산 공개 등 각종 개혁을 감행한 결과 집권 1년차 내내 80%를 웃돌았던 YS의 지지율도 집권 마지막에는 6%까지 내려앉았다. 표면적으로는 아들 비리와 쌀 시장 개방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국회를 무시했던 대통령의 독주에 기인한 측면이 강했다.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해 밀어붙이는 개혁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개혁은 지난 정권의 잘못을 지우고 흔적을 제거하는데 치중하는 행태 이상으로 잘해 온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더욱 잘하도록 힘써야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새 정부의 개혁 속도와 방식이 매우 급진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교사 전환 계획은 당장 철회돼야 한다. 아무리 정의와 펑등이라는 이상적 가치가 경쟁과 공정이라는 현실적 가치를 압도하는 정권이 들어섰더라도 이 계획에는 그 어떤 명분과 논리도 없다. 설령 재벌과 정규직과 점주는 강자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과 알바생은 약자일지라도 기간제 교사는 약자가 아닌 공정한 기회 앞에 놓여진 예비교사이다.

 조광조의 개혁도 그 과격성으로 인해 기묘사화를 유발시키며 실패로 돌아갔다. 청일전쟁 후 일본을 배후로 김홍집 내각에 의해 단행된 단발령은 나라 안을 온통 반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국민이 원하는 개혁도 서둘거나 편이 갈라지면 심각한 반작용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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