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출격대기 명령 여부와 광주 전일빌딩 헬기 기총소사 사건에 대한 특별조사를 지시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겠다는 평소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냈다.

문 대통령이 23일 특별지시를 한 직접적인 계기는 5·18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투기에 공대지 폭탄(공중에서 지상으로 투하하는 폭탄)을 장착한 채 출격을 대기했다는 인터뷰가 최근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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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사하는 문 대통령
(광주=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당시 신군부가 광주에 전투기 폭격까지 준비한 것이 사실이라면 계엄군을 투입해 광주 시민에게 총격을 가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까지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관련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고, 전투기를 동원한 폭격까지 계획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도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해 국방부에 특별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전투기 출격대기와 함께 진상조사를 지시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 기총사격 여부는 이미 문 대통령이 수차례 진상규명 의지를 밝혀왔고, 광주시 차원의 진상조사도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은 제37주년 5·18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더욱 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날 특별지시의 배경에는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와 왜곡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이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사태는 '폭동'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고 기술했고, 무장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집요하게 공격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북한이 5·18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강도 높게 제기했다.

그는 전일빌딩 헬기 사격에 대해서도 "일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면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미국인 아놀드 피터슨 목사를 가리켜 '목사가 아니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두환 회고록' 등 5·18 민주화운동에 '색깔'을 덧씌우려는 시도에 대해 문 대통령은 5·18 기념사에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진상규명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일종의 부채의식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미 수차례 광주민주화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데 대한 부채의식을 표현한 바 있다. 5·18 기념사에서도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라고 고백했다.

자서전 '운명'에서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마지막 순간 배신이 5·18 광주항쟁에서 광주시민들로 하여금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도록 했다고 생각한다'고 기술한 바 있다.

당시 서울지역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신군부에 군 투입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며 20만명 가까이 집결한 대학생 시위대의 해산을 결정한 '서울역 대회군'에 대한 비판과 광주 시민에 대한 부채의식을 함께 표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다시 한 번 진상규명 의지를 밝힌 만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한 후속조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자 5·18 기념사를 통해서 재확인한 5·18 정신을 헌법전문(前文)에 담는 문제는 앞으로 있을 개헌논의 때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법과 5·18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법 등의 제정도 활발히 논의될 전망이다.

또 독립적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추가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옛 전남도청 원형보존 사업 등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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