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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 중 어떤 시기가 가장 의미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잠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쩌면 과거는 이미 흘러간 시간이기에 현재 또는 미래에 무게중심을 두는 독자가 많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과거는 그저 지나간 한 때에 불과한 것일까!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불혹이면 자신의 삶의 궤적이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해 언행, 성격, 인품, 말투 등이 고스란히 표정에 묻어나게 된다. 이처럼 현재는 지나온 날들의 자취이며, 미래는 오늘을 바탕으로 새로운 흔적을 남기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자신이 몰랐던 과거를 되돌아보며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열어가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런던에서 작은 중고 카메라 가게를 운영하는 ‘토니’는 스스로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혼 후 혼자 살아가고 있지만, 전처와의 관계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남편 없이 홀로 임신한 딸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출산 준비도 요청할 경우 도와주고 있다. 그렇게 나름의 규칙을 갖고 평범하게 진행되던 토니의 일상은 한 통의 편지로 흔들린다. ‘사라’라는 여인의 부고와 토니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연락이었다. 이로써 토니는 50년 전 첫사랑 ‘베로니카’를 기억해 낸다. 유품을 남긴 ‘사라’는 바로 베로니카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수소문 끝에 베로니카와 어렵사리 재회한다. 잊지 못할 첫 사랑이자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던 그녀. 당시 토니에게 그녀는 모든 청춘이 그러하듯 삶의 전부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그는 상처 받았고 배신감마저 느껴야 했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기억을 달랐다. 그녀는 토니 앞에 유품대신 한 통의 편지만을 남긴 채 차갑게 돌아섰다. 그것은 기억에도 없었던 편지로, 베로니카와 친구의 만남을 모욕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발신인은 토니 자신이었다. 이로써 그는 자의적으로 채워 넣은 과거의 기억과 지나온 삶의 모습을 재조립해 나간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의 기억이 다른 일은 사실 비일비재하다. 특히 그 사건의 핵심 인물이 자신일 경우 우리는 대체로 가해자가 되기보다는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재정리한다. 즉, 가해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당시 정황 상 어쩔 수 없었다거나, 억울함을 덧대어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으로 손질한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토니 역시 자신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다. 시련 당한 자신의 가련한 감정 외엔 그 어떤 사실관계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50년 전 자신이 쓴 편지로 인해 그는 얼마나 기억이 불확실하고 또 왜곡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삶도 돌아 볼 계기를 갖는다. 단지 아내가 충분한 설명도 없이 자신을 떠난 것이라고 단정짓던 토니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상대방의 위치에서 재고해 본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다양한 입장의 진실과 마주하며 변화해 가는 노인의 성장담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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