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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인천문인협회 이사
옛말에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뒤웅박이란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근처에 구멍을 뚫거나 꼭지 부분을 베어 내고 속을 파낸 바가지를 말한다.

 이 뒤웅박은 용도가 다양해 부잣집에서는 쌀을 담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기도 한다. 이처럼 여자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느냐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느냐에 따라 그 여자의 팔자가 결정된다는 뜻으로 쓰였다.

 요즘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달걀이 뒤웅박 팔자의 장본인이 됐다.

 50년대 말, 우리 집에는 두서너 마리의 암탉을 키웠다. 알을 낳았다고 자랑하는 닭울음 소리가 들리는 둥지로 달려가면 닭의 체온이 묻어있는 따끈한 달걀을 만져볼 수 있었다.

 어느 땐 껍질이 굳지 않아 풍선처럼 말랑말랑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촉감을 느껴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 달걀 양끝을 이빨로 구멍 내어 마셔본 기억은 별로 없다.

 당시 달걀찜은 가장인 할아버지의 전용 반찬이었고 귀한 손님이 오셨을 때 예우를 표하는 특급 요리였다. 하숙집 주인의 사랑을 받는 하숙생의 밥공기 속에는 달걀노른자가 숨겨져 있기도 했다. 그 귀했던 달걀이 요즘은 독극물 취급을 당하며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땅속에 묻히고 있다.

 그 와중에 폐기처분 당하지 않고 가정에 남아있는 달걀 중 위해성이 없는 것은 아이들에게, 문제의 코드번호가 찍힌 것은 아빠의 반찬용으로 제공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살충제 달걀의 이력을 살펴보면 양계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기인된다. 말이 양계장이지 달걀 공장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양 깃을 펼쳐 푸드덕 홰를 칠 수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닭은 인공사료를 먹은 후 잠만 자는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

 예전의 기억으로는 암탉이 병아리 소대를 이끌고 앞마당에 나와 배를 깔고 흙먼지가 날릴 정도로 흙 목욕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 닭의 피부에 기생하고 있는 진드기 같은 각종 해충을 떨어내기 위한 방어 작업이었다.

 하지만 요즘 양계장에 갇혀있는 암탉으로선 꿈도 꿀 수 없는 환경이기에 달걀 공장 주인은 어쩔 수 없이 살충제를 깃털 곳곳에 뿌려주었다. 마치 한국전쟁 직후 아이들의 머리칼과 속옷을 헤치며 발암물질인 DDT 가루를 뿌려주던 모습이다.

 결국 살충제 달걀의 출현은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기에 암탉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식약처는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에 최고 농도(0.0763mg/kg)로 오염된 달걀을 매일 2.6개씩 평생 먹거나 한 번에 126개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반면에 대한의사협회는 식약처의 발표가 너무 과하고 단정적 표현이라고 혹평했다.

 살충제 달걀이 드러나기 전에도 일부 악덕업자들은 껍질이 깨지거나 병아리가 부화하다만 불량 위해 달걀 내용물을 제과 공장과 음식점에 공급했다.

 건강과 위생을 따지자면 문제 되는 것이 어찌 달걀뿐이겠는가. 중금속 농약에 노출된 일부 수입산 한약재와 농수산물, 항생제 맛이 나는 횟집 요리 등 털면 먼지 안 날 먹거리가 없을 것 같다.

 작금 국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살충제 달걀만이 아니다. 식품·의약품 분야의 연구나 경력·경험이 없고 전문 행정가도 아닌 인물을 단지 부산에서 대통령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로 ‘막중한 국민 건강을 책임질 적임자’로 임명한 보은과 코드 인사에 국민은 불안과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원칙에 어긋난 인사는 당사자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가 아닌, 파멸시키는 지름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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