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목 전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jpg
▲ 홍순목 서인천 장학재단 이사
청와대와 국회가 내년 동시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는 가운데 지방자치의 확대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지방의원의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도 제도적인 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었고 개선돼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선 지방정부로부터 입법권을 가진 지방의회에 제출되는 조례는 상위법의 제개정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정부에 상위법 제개정에 따른 조례 제개정 요구를 하고 모범조례(안)도 함께 내려 보낸다. 물론 지방의원이 지역의 민원과 주민의 요구에 근거해 조례를 제정하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위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나 가능하고 대부분 중앙정부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라는 점이 현재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재정의 운용 즉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데 이르러서는 더 심각하다. 세수가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지역의 특성과 요구에 근거해 편성할 수 있는 예산이 매우 한정돼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에서 결정된 사업을 말초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매칭예산이다. 중앙정부에서 요구하는 매칭비율과 예산편성 지침을 시달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각종 예산 지원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방자치단체 예산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자치단체장의 주요한 역할은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고 그럴수록 중앙정부에 의존하거나 예속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지방재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이 속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가 높을수록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자치단체의 장이 게을러서 중앙정부로부터 예산 확보에 실패하면 그만큼 재정자립도가 높아진다. 반대로 열심히 중앙정부와 국회를 설득해 많은 예산 지원을 확보하면 할수록 재정자립도는 떨어진다.

 제도적으로 자치입법권과 지방의 자치재정권이 확고히 자리를 잡을 때에라야 진정한 지방자치가 세워질 수 있다.

 정치권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최근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에서는 내년도 전국 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공직후보자를 경선보다 전략공천을 통해서 공천하겠다고 한다. 민주당 측도 최근 높은 당지지도에 힘입어 중앙당과 지방의 시도당이 서로 공천권을 갖겠다는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 경선에 의해 후보가 정해지면 그 후보는 당원과 국민들에 빚진 자가 되고 이 빚을 갚기 위해 당원과 국민들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경선이 아닌 전략공천을 통해 후보자가 되고 당선된 사람은 공천권을 행사한 권력자나 집단의 눈치만 보게 될 것은 자명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원을 제 맘대로 부리는 수하 정도로 생각한다면 지방자치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리가 없다.

 지방의 풀뿌리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별시, 광역시 기초의회를 폐지한다는 발표가 났을 때 어느 기초의회 전문위원이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왜 기초의회를 폐지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가만히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며 반대의사 표명을 은근히 재촉했다. 그때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폐지 대상의 당사자가 말하는 것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기초의회가 잘해왔다면 국민이 먼저 반대할 것이다."

 국민들은 지방자치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동안 잘 해왔고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다면 국민들이 지방자치의 확대를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부패와 비리 그리고 여전한 자리다툼이나 벌이고 있다면, 지방자치가 정체되고 오히려 후퇴하더라도 나서서 변호하고 대변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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