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R는 부담없는 순박한 첫인상을 지녔다. 원색이 섞이지 않은 방정한 몸단장은 첫인상과 함께 웬만한 취재원에게 호의를 불러 낸다. R는 또 밖으로 도는 기자의 습성상 사시사철 거무튀튀한 피부 톤을 지녔다. 없는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기에 안성맞춤이다.

 웃음기 없는 R의 얼굴에는 약간의 그늘도 있다. 이마저도 취재원이 원하면 자신의 하소연도 내뱉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도움이 된다. R의 말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취재원이나 상대방이 이해하기 좋은 정도의 발음과 속도를 구사한다. 그의 말투와 첫인상은 기자로서의 진중함을 배가시키는 포인트가 된다.

 느닷없이 찾아온 기자에게 여느 취재원이 가질 법한 ‘거부감의 장벽’이 그의 ‘아우라’ 속에 쉽게 무너져 내리는 이유다.

 거리감의 장벽을 허무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일찌감치 벌어 놓은 그이지만, 신변잡기와 두루뭉술한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다. 곧장 사안의 쟁점으로 치고 들어간다. 하지만 불쾌감과 난처함의 코너로 취재원을 몰아 붙이는 경우는 없다.

 ‘유도리(융통성)와 밀당’의 시간으로 최초 취재분만 확보한다. 목표물을 코앞에 둔 그의 눈은 매섭게 빛나지만 덥석 무는 법이 없다. ‘원 사이드(One Side)’한 정보의 함정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어서다.

R는 또 초면의 취재원에게 2·3차분 취재분량까지 쥐어 짜내는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하지만 베일에 가려진 취재원과 그의 관계 속에서 후속 취재는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자 R도 여느 기자처럼 흐트러질 법한 술자리는 제법 갖는다. 대포집 주인장은 그가 오면 연신 인물이 좋다고 하고, 주위 사람들은 그의 취재력에 대해 ‘비행기’를 태워보려 하지만 R는 뜬구름 위로 올라 가지 않는다. 특유의 냉정함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취재에 대해 술과 함께 깊은 사색에 잠기는 그다.

R에게 술은 취재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자,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일간지 4단 기사에 대한 회한을 갈음하는 도구일 뿐이다. 누구처럼 주색잡기의 전희나 향락 그 자체로의 술은 R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R는 기자 생활 만큼이나 가정과 식구들 모두에게 충실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것이 2017년을 살아가는 기자 R의 지고지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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