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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3일 토요일 맑음. 평소처럼 YMCA에 출근했다. 오후 5시 5분에 기차를 타고 인천에 갔다. 동석기(董錫基) 목사가 역으로 마중 나와서 나를 자택으로 데리고 갔다. 동석기 목사의 깔끔한 목사관, 매력적인 아내 때문에 기분이 좋았고, 조선식 음식만 제외하면 마치 미국인 가정에 초대받은 것 같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서상수(徐相壽)의 아들인 서병의(徐丙儀)를 만났다. 서병의는 아주 멋진 청년으로 성장했다."

"4일 일요일 맑음. 오전 11시에 동석기 씨의 교회에서 마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의 구절에 대해 신도들에게 설교했다. 오후 12시 45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국역 윤치호 영문일기 5」에 수록된 1916년 6월 3일, 4일 일기의 발췌 내용이다. 이 일기는 윤치호(尹致昊)가 영문으로 기록한 것을 번역한 것으로, 흥미롭게도 내용 안에 당시 인천 내리교회 담임목사로 있던 동석기 목사와 또 한 사람 인천 인물 서병의, 그리고 그의 아버지 서상집이 등장한다.

윤치호가 인천과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또 윤치호가 인천 내리교회까지 내려올 만큼 동석기 목사와 긴밀하다 할 자료도 찾을 수 없다. 나이로도 동 목사는 윤치호보다 15세나 밑이다. 그런데 윤치호는 동석기 목사와 부인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서병의에 대해서도 썩 따듯한 필치다.

종교적으로 윤치호는 1887년 중국 유학 중 세례를 받고 한국인 최초로 남감리교인(南監理敎人)이 된 인물이다. 1916년 4월부터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총무를 지내고 있었으니, 동 목사가 설교를 위해 얼마든지 윤치호를 초청할 수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그래야 1916년 6월 3일 토요일 오후 동 목사의 윤치호 저녁 초대, 그리고 다음 날 4일 일요일 윤치호의 예배 설교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동석기 목사는 알려진 대로 감리교 목사로 목회 생활을 시작했다. 1914년 6월부터 1917년 5월까지는 내리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시무한 바 있다.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으며, 1927년 미국 유학 중 그리스도의 교회 신자가 되어 감리교단을 탈회하고 한국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한 인물이다.

또 한 사람 서병의는 최단(最短) 인천감리(仁川監理)를 지낸 서상집의 아들이다. 여기서 먼저 바로잡을 것이 있다. 윤치호의 번역 일기에 서병의(徐丙儀) 표기는 서병의(徐丙義)가 맞고, 또 그 아버지를 서상수(徐相壽)라 한 것은 서상집(徐相潗)이 옳다는 점이다. 번역 과정에서의 잘못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윤치호가 착각해 기록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서상집은 대구 출신으로 인천 상업계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상재(商才)와 함께 처세가 뛰어난 인물로 인천항신상협회(仁川港紳商協會)의 창립을 주도하는 등 다방면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1902년 7월 5일부터 8월 17일까지 44일 동안 초단명 인천감리를 지내기도 했다.

윤치호는 이런 서상집과 그의 아들 서병의의 어린 시절까지를 진즉부터 잘 알고 있는 듯이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서상집이 한때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서병의에 대해 그토록 화기(和氣) 넘쳤던 윤치호의 필치는 1919년 11월 17일 일기에서는 급랭한다. 거의 매도(罵倒) 수준이다.

"서병의 역시 YMCA가 최신 시설 등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YMCA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는 데는 단돈 한 푼도 내려고 하지 않는, 외국에서 교육받은 조선인이다."

회비는 내지 않고 불평만 하는 서병의를 비판한 내용이다. 서병의는 일찍이 영국 유학길에 올라 학문은 물론 축구 지식을 습득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최초의 정통 축구 심판으로서 권위와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윤치호의 혹평처럼 지나치게 인색했거나 또 다른 무슨 까닭이 있었는지, 광복 후 중국에서 독립군에게 일가족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물론 후일 윤치호 자신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고 말았지만. 윤치호 일기에 드러난 인천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며 문득 인간의 삶이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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