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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치료 받으러 절반은 아픈이 도우러 매일 병원 출근하죠

같은 아픔 겪는 환자들 돌보는 신장장애인 전영희 씨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2017년 09월 08일 금요일 제19면
▲ 신장장애인인 전영희 씨가 7일 인천재활의원에서 신장장애환자를 돌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신장장애인인 전영희 씨가 7일 인천재활의원에서 신장장애환자를 돌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당신도 환자인데 나를 돌봐줘 고맙다고 합니다. 땀도 닦아 주고 부채질도 해 줘요. 저에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전영희(56)씨는 올해로 20년째 혈액 투석을 받고 있는 신장장애인이다. 그는 20년 전 처음으로 고혈압이 왔다. 혈압이 230까지 치솟고 온몸이 부었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신장염 판정을 내렸다. 1년 동안 약을 먹었지만 신장은 조금씩 악화됐고, 1998년부터는 혈액 투석을 받기 시작했다.

혈액 투석은 이틀에 한 번씩 일주일에 3회, 때마다 4시간씩 진행된다. 혈액 투석을 받지 않으면 독이 몸에 쌓이는 요독 증세가 생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전 씨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는 큰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애들 학교에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학교에 일이 생기면 할머니가 대신 갔다. 다행히 남편이 집안일 등 거의 모든 것을 도와줘서 견딜 수 있었다. 그는 "항상 남편에게 고맙고, 아이들에게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 씨가 인천재활의원(장애인 의료재활시설)의 전신인 ‘사랑의 내과’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이다. 사랑의 내과는 당시 사랑의장기기증운동 경인지역본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지금은 모퉁이복지재단이 뒤를 잇고 있다.

10년 동안 인천재활의원에서 치료를 받던 전 씨는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08년부터 병원 관리부 소속 진료지원팀에서 근무하게 된 전 씨는 간호사들의 업무 보조 역할을 맡고 있다.

간호사들이 쓰는 기구들을 소독하고, 환자들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등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월·수·금은 혈액 투석을 받기 위해, 화·목·토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나온다. 매일같이 병원에 나오는 것이 그의 행복이다.

"환자들보다는 내가 건강하니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있는 거예요. 같은 혈액 투석 환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을 보다 공감할 수 있죠. 내가 먹었던 약이나 음식 얘기를 해 주면 수긍도 많이 해 주고요. 우리 병원 분위기가 특히 그래요. 가족 같지요.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환자가 있으면 걱정부터 됩니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쉬는 것보다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도 병원 간호사들이나 환자들과 더욱 끈끈해졌다. 아이들은 쉬라지만 전 씨는 아직 그럴 마음이 없다. "지금 50대 후반인데 10년은 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병원을 찾는 모든 신장장애인들이 건강하게 투석받는 것이 전 씨의 가장 큰 바람이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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