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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사>한국인간관계연구소 대표

인터넷 기사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 보며 스마트폰으로 촬영만 한 10대들’이라는 기사를 보고 이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그냥 넘기기에는 왠지 무엇인가 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미국 플로리다 주(州) 코코아 지역의 한 호수에서 미국인 남성이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이 남성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동영상을 찍으며 웃기까지 한 10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미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당시 호수 근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10대 소년 5명은 구조를 요청하기는커녕 오히려 던의 익사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들 중 한 명이 "곧 죽어간다"고 말하고 또 다른 소년은 "저 사람 고개가 자꾸 물에 들어간다. 저러다 곧 죽겠다. 빠져나와, 그러다 죽겠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영상은 2분 이상 촬영됐는데 그동안 이 소년들은 아무런 구조 시도를 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방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두 사람의 군 고위층 인사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 사람은 군경력 42년 동안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으며 오직 군무에만 충실해 전역하는 합참의장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숨어 있는 기둥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또 한 사람은 공관병 갑질로 세상의 비난을 받는 사람을 조명하게 된다. 이 분은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데 그의 행동 형태는 몰종교적 작태를 보였다고 본다. 이 나라의 지도층이 아직도 이런 종교관에 함몰돼 있는 사태를 보면서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최근 영화화돼 논란의 대상이 되는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 이야기이다. 천만 관중을 돌파했음은 국민적 관심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다. 이 영화는 외국기자의 눈으로 본 광주민주화운동의 전말을 조명한 것이다. 이와 함께 발포를 명령한 실질적 기록이 보고되면서 우리의 슬픈 역사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됨에 우리 근대사의 슬픈 모습을 재조명하게 된다. 필자는 그 시기에 시골학교 교사로 근무해 자세한 진실은 알 수 없었다. 몇 년 후 해외 유학시절에 일본대학 도서관에서 지난 시기의 신문을 보며 며칠간 식음을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특수부대는 적을 교란시키기 위해 혹독한 교육과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공격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마련인데 이들을 중심으로 진압군을 구성했다는 자체는 인간성 내지 자기 국민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이들의 작품인 것이다. 거기에 더해 실탄을 지급하고 자기 백성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하는 이들이 진정한 이 나라 백성이고 진정한 현대인의 사고인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물론 군의 속성은 공격성이다. 그러나 이 공격성은 이 나라 백성을 지키기 위한 적을 향한 공격성이어야지 자기 백성을 향한 공격성은 군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우리나라 군 역사의 치욕적인 사건인 것이다.

혹자는 군 지도자 몇 명의 탈선에 기인하다고 주장하나 이는 주변의 방관자 내지 동조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과거는 지나갔다. 이 시기에 역사의 시비를 확실히 하고 다시는 자기 백성을 향한 공격성이 발동되지 않도록 보다 성숙한 군 문화와 더불어 군 지도자들에 대한 전향적인 인본주의 사고와 애족적 자기 성찰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피해자들에 대한 국민적 동조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지역성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애족적 사고보다는 국민을 기망하는 몰철학적 정치인들이다. 이를 이용하는 이들이 정치현장에 설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정치 수준인 것이다.

 국민의 정치수준을 높여주는 교양교육, 철학교육을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원론을 파고 들어가면 이 나라 교육의 부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옛 스승은 제자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불찰을 탓하고 붓을 꺾고 산중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 나라 교육자들은 자기의 의무를 다했는지 물어야 할 것이며, 이 나라의 진정한 언론이 있었다면 그 치욕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 나라의 진정한 지도층이 있었다면 우리의 슬픈 역사는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 지도층의 비겁한 방관적 자세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위해서 역사의 방관자가 된 나 자신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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