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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익 행정학박사
올해 4월 말 한 TV 언론사에서 주관한 제19대 대통령 후보자 간 토론회에서 사드배치와 관련한 질의응답 과정 중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용어가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지금은 한반도 위기를 둘러싼 국제적 이슈에서 정작 당사국인 한국이 빠진 채 논의되는 소위 ‘한국 건너뛰기’ 또는 ‘한국 왕따’ 현상을 빗대어 외교적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즉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 안보·외교·군사상 위기관리에 있어서 직접 당사자인 한국을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미국의 선제타격론, 예방전쟁론, 전쟁불사론, 미·북 협상론, 정권교체론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코리아 패싱이 국내외적으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돌이켜 보건대 한반도 현안 해결과 관련한 코리아 패싱 현상은 우리나라 역사상 그 유사 사례가 수차례 나타나고 있다. 예외 없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영토 할양 또는 분할, 지배권에 관한 사안들이었다. 우리로서는 뼈아픈 역사이며 비애감을 느끼는 사건들이다.

그 첫 번째 사례는 임진왜란 종반기에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에 제시한 강화조약이다. 조선을 8도(八道)로 나누고 한양과 한강이남 4도를 일본에게 할양한다는 요구사항이 있었다. 조선은 철저히 배제된 채 명나라와 일본이 협상을 진행하다 명나라의 거절로 결렬됐다.

두 번째는 구한말인 청일전쟁 후 1895년 4월 청나라와 일본 간 맺은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조선에 대한 청국의 종주권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강화조약을 통해서도 한국에 대한 보호·지도권을 러시아로부터 받아내게 된다. 또한 1905년 7월에는 미일 간 맺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는 대신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골자로 하는 비밀각서를 교환한다. 그리고 1945년 2월 미국, 영국, 소련 간 얄타협정에 따라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은 미국이, 38도선 이북은 소련이 분할 점령하게 된다. 이와 함께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UN군)과 북한, 중국이 맺은 정전협정이다. 역시 남한은 정전 협정체결에서 당사국의 일원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나라의 안위와 명운이 외세에 의해 결정되는 불운한 역사가 600년 이상 왜 반복되고 있는가?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필연적인 운명인가 국가 통치 내부의 원인에 의한 결과인가? 복합적 요인이라 하겠다.

먼저 직접적이고 가장 치명적인 원인은 국민 모두의 단합된 힘과 주체성이 부족하다 점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깨어있는 역사의식과 확고한 철학의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진왜란 후 선조의 한탄스러운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명나라 군대의 힘이 아니면 왜적을 물리쳤겠는가. 강토를 회복한 것은 모두 명나라 군대의 힘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한 일이 없다."

국가 위기 시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가 미약했다. 아직도 정치인들의 경우 국익에 앞서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해서 소탐대실을 범하는 어리석은 행태가 근원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지 않은가?

국가 지도자의 국제적인 식견과 능력, 자질의 무능과 부정부패 그리고 과도한 정권 쟁취욕이 국가와 국민에게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국가 간 힘의 균형과 견제의 실패가 지배와 피지배 또는 주종의 관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번번이 도외시하거나 망각했기 때문이다.

현 문재인 정부는 독자적인 위기관리 방안으로 한반도 운전자론 또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강력한 외교력과 군사력, 국제정치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자칫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 不知己, 每戰必殆)"라는 2500여 년 전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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