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객원논설위원
북한 풍계리 만갑산은 아파도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다. 김정은의 6차 핵실험, 무심한 절기 백로는 어느새 코앞을 스쳐갔다. 이슬지는 초가을, 짙푸른 밤 향기를 뿜어대던 야향목도 성장을 멈췄다. 추분이 멀지 않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입산"이라는 졸작 단시조 한 수로 이 철을 맞아 동행한다.

어허 저기 저 한 사람 산속으로 들어서네 ∥ 숲길 따라 가다말고 사라지고 없네그려 ∥ 산 빛에 / 다 녹아설랑 / 그만 산이 돼 버렸네.

본인의 문학석사 학위논문 ‘산강 시조의 제유적 세계인식과 낙원사상 연구’에 실린 작품이다. 사람과 산이 하나가 되어 우주생명으로 연결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노래하였다. 가을산과 문학기행, 가을과 문학상은 잘 어울린다. 문학상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권위 있는 문학상이면 더할 나위 없다. 요즈음 국내외에 온갖 종류의 문학상이 넘쳐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시행주체나 장르에 따라 여러 문학상이 있다. 이른바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프랑스의 공쿠르상은 상금액이 10유로밖에 안 되지만 수상의 영광은 남다르다. 상금액은 높을수록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에 걸맞게 상의 권위가 꼭 따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문학상이 있으며 새로운 문학상이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겉은 그럴 듯하지만 속내는 탐탁지 않은 상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 작가 약력에 수상경력이 없으면 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어떤 분들의 약력에는 문학상뿐만 아니라 각종 수상 경력이 엄청나게 나열되어 있기도 하다. 그만큼 훌륭하게 볼 수도 있지만 자기 과시성이 높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상금액수가 높은 문학상이 제정되면 그 분야의 원로급 문인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수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문학상마다 작품성이나 기여도 등 수상 기준이 다르겠지만, 거기에 들지 못하는 역량 있는 문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보일 수도 있다. 상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라고 할까. 신인들이나 문인지망생 중에는 작품 천착은 소홀히 하면서 오로지 상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다. 또한 상금이 적다고 스스로 당선을 취하하기도 한다. 이즈음 적폐청산이 정치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데, 불나방처럼 상만 쫓아다니는 사람이나 이를 악용하여 상을 남발하는 수여주체나 다 문단의 적폐가 아니겠는가. 직장 신입직원을 뽑을 때 스펙 채용의 문제점 때문에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을 장려하는 것도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문학예술의 본질상 자율적 순화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미묘한 문제다.

그러면 본인이 소속된 시조단에 한정하여 바람직한 시조 문학상에 대한 졸견을 적어본다. 첫째, 모집 공고한 내용에 맞는 작품과 작가여야 한다. 주제, 경력 등이 응모조건에 부응하고, 수상 시조의 작품성이 뛰어나며, 시조 부흥이나 수여단체에 대한 기여도도 참작되어야 한다. 둘째, 시행주체는 모집 공고한 대로 절차를 준수하여야 한다. 대상(大賞)이나 본상의 당선자 수가 공고안보다 많아지면 일단 품격이 떨어진다. 기라성 같은 시조시인이나 탁월한 작품이 아니면 복수 수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집행부의 사적 관계인의 수상에는 신중해야 한다. 집행부는 영광의 자리이면서도 자기 절제 및 봉사의 자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주변에 상을 남발한다는 인식을 주면 그 상의 권위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셋째, 심사단 구성 및 심사를 충실히 하고 심사자 명단을 밝혀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자기 명예가 걸린 문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수여단체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단체의 창립 취지와 수상의 기본 성격이 무너지면 안 될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정도를 가야 한다. 그래야만 보다 권위 있는 시조 문학상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끝으로, 본인이 한때 이사장을 맡은 바 있던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서 주관하는 상들에 관하여 살펴본다. <역동시조문학상>과 <수안보온천시조문학상> 및 <한국시조문학신인상> 등이 그것이다. 수안보온천시조문학상은 시조와 온천의 상생을 위하여 애쓴 끝에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의 기금을 후원받아 2014년부터 제정하여 매년 시행하고 있다. 역동시조문학상은 "탄로가"를 읊으신 고려 말 역동 우탁 선생의 시조 창작의 얼을 계승하기 위하여 단양우씨문희공파의 기금을 지원받아 제정된 상이다. 한때 중단되었던 것을 되살려 2015년부터 다시 시행하였다. 이 상들이 사계에서 더 인정받아 권위 있는 시조 문학상으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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