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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 전 할머니 집 현관 모습. <수원시 제공>
지난 13일 오전 9시께 수원시 팔달구 지동의 한 주택 앞. 관할 구청과 동 주민센터 소속 환경미화원 20여 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집 앞에는 동 주민센터 복지담당자가 귀띔했던 대로 각종 쓰레기들이 방치된 채 나뒹굴고 있어 집 안의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집 내부는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환경미화원들이 현관문을 열자 사람 한 명도 오갈 수 없을 정도로 산더미처럼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쓰레기를 치우지 않아 곳곳에서 냄새도 났다. 인근 주민들은 폭염이 이어진 올 여름철 이웃집에서 나는 악취를 참고 견뎌야 했다.

동 주민센터도 집 안에서 심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들의 수차례에 걸친 민원에도 함부로 사유재산에 손을 댈 수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동네에서 벌어진 때 아닌 ‘쓰레기 대란’은 이 집에 사는 안모(71)할머니 부부의 딸이 8월 초 부모의 집을 청소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날 노부부 집 안에서 치운 쓰레기 양이 10t 정도로 추정된다고 환경미화원들은 설명했다. 이들은 집 안의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5t짜리 청소차량과 재활용품 수거차량을 동원했는데, 화물칸이 넘칠 정도로 많이 배출돼 계속 쓰레기처리장을 오갔다.

동 복지 담당자들은 이달 초순께 현장 조사를 위해 안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안 광경에 놀란 이들은 "저장강박증이 의심된다"며 "남편(82)의 위암·치매 치료와 안 할머니의 정신과 치료 지원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수원시복지허브화추진단에 전달했다.

복지허브화추진단은 이달 초 사례회의를 열어 노부부를 ‘고난도 사례관리 대상자’로 판단하고 즉각 지원계획을 수립했다. 고난도 사례관리 대상자는 안전과 정신건강 등 두 가지 영역이 모두 포함된 긴급한 문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복지허브화추진단은 노부부 자녀들을 설득해 할아버지는 인근 병원에서 위암·치매 치료를, 할머니는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안내했다. 또 수원시 노인정신건강센터와 연계해 할머니의 정신과 상담과 할아버지의 치매 관리, 노부부의 건강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통합사례사를 주 1회 가정에 파견하기로 했다.

박미숙 수원시 복지허브화추진단장은 "복지서비스가 점점 확대되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긴급 지원이 필요한 이웃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찾아가는 복지행정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줄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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