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모플라지 어빌러티(Camouflage ability)’는 본래의 정체나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거짓으로 꾸미는 위장술(僞裝術)이다.

 위장술의 대가인 나방을 비롯해 동식물과 인류가 위장을 통해 최종적으로 획득하고자 함은 눈앞에 닥친 위기 상황로부터의 즉각적인 모면과 생존, 그리고 앞으로의 영속(永續)이다.

 지구 역사가 진행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위장술이 실행되는 공간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자연적 물리적 공간이었다. 하지만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작된 디지털 혁명은 기존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상 공간(인터넷)을 무제한적으로 생산해 냈고 인간의 위장 영역도 그만큼 확장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쟁과도 같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루와 배설물, 주변 지형지물과의 물아일체(物我一體)를 이뤄낸 나방의 진화통(進化痛)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은 물리적 공간 안에서 천적을 만났을 때의 위급성과 다급함, 생존에의 절실함, 위계서열에 따른 압박감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마트폰을 통한 ‘내 손 안의 가상공간’은 현실이 주지 못하는 쾌감과 자극, 정보가 널려 있는 초현실을 선별적으로 갖게 함으로써 고민과 불만, 고통이 둘러싸고 있는 오리지널 세계를 밀쳐 내고 압도적 지지(활용률)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가짜 공간을 활용한 위장은 국가를 최종 지휘하는 통수권자의 역겨운 뒷거래의 삶에서부터 재선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과 공공성의 탈을 쓴 공기관, 지역 살림을 책임지는 지방 공무원의 인생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의 죄는 숨기고 자극적 소재로 위장하는 수단이 돼 버렸다.

 사회학자 장 보들리야르는 일찍이 이 같은 ‘파생된 실재’의 진화를 네 단계로 설파했다. 우선은 이미지가 현실을 반영한 뒤 이미지는 현실을 감추고, 이어 이미지는 존재하는 현실은 부재한다고까지 한 뒤, 이미지는 현실과 무관한 가장 현실 같은 세계로 등극해 원본과 창조품의 구별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를 방목한다. 보들리야르는 위장된 실재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는 ‘무시하면서 거리를 두되 늘 깨어 있으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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