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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기 가평군수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사단장은 오늘 대민 지원에 나섰다가 가평에서 진기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적의 폭격으로 지역 학교가 무너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그 옆에 천막을 치고 오밀조밀 수업을 받고 있는 150명의 어린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이 학생들은 묵직한 포성에도 아랑곳 않고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이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 속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있는 한 이 나라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사단장은 이 아이들을 돕고 싶습니다. 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어 주려고 하는데 장병 여러분도 함께 동참하지 않으시렵니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미 보병 제40사단장 조셉 클리랜드 소장이 부대 장병에게 보낸 전언통신문의 일부이다. 이 통신문의 특징은 사단장이 부하 장병들에게 명령조로 말하지 않고 청유형으로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호소에 힘입어 1만5천 명의 사단 장병들은 1인당 2달러씩 3만1천 달러를 모금했다.

사단장은 이 기금으로 학교를 건립하고 사단 최초의 전사자인 카이저 하사의 이름을 따 가이사중학원으로 명명했다. 나중에 가평고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평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보내오고 있다.

필자는 9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 아라미토스 사령부에서 열린 미 보병 제40사단 창설 100주년 기념식에 다녀왔다.

40사단은 1917년 9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캠프 키어니에서 창설했다. 사단 창설 초기에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네바다, 유타주 등 서부지역 향토방위군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40사단이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이다. 40사단은 철의 삼각지 전투와 양구 단장의 능선과 샌드백 캐슬 전투에서 악전고투 끝에 최후의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에서 40사단 최초의 전사자인 카이저 하사를 포함해 311명 전사, 1천180명이 부상당했다.

19∼20세의 미군 청년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를 잘 알지도 못했고 우리 국민 한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국만리 먼 길을 달려와 혹독한 추위와 적의 집요한 공격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의 영토와 자유를 지키고 학교까지 지어줬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미 보병 40사단 생존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이제 평균 나이 87세 고령으로 거동도 불편하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나는 참전용사 한 분 한 분의 손을 잡아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벽안의 노병들은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휠체어를 탄 어느 노병의 눈동자 속에서 설산 위에 떠오른 푸른 달과 차갑고 투명한 연인산의 겨울 하늘을 보았다. 이 노병이 과연 한국전쟁 때 공산군을 무찌르던 용맹무쌍한 전사였을까 의심이 들었다. 차라리 그는 구도의 길을 걷는 성자 같았다. 또한 그는 김정은 북한 정권의 계속되는 핵과 미사일 책동을 비난하며 우리의 안보를 걱정해주는 너그럽고 인자한 큰형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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