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연수구 경원대로 이허겸 묘역에 위치한 원인재 사당의 모습.  <연수구 제공>
▲ 인천시 연수구 경원대로 이허겸 묘역에 위치한 원인재 사당. <인천시 연수구 제공>
인천시민들에게 ‘원인재’는 친숙한 이름이다. 아마도 인천도시철도 1호선과 수인선 환승역인 원인재역 덕분일 것이다. 이 역명은 연수구 경원대로에 위치한 한 사당에서 따왔다.

원인재역에서 신연수역 쪽으로 걷다 보면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자리잡은 소나무와 한옥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인천 이씨의 재실인 기와집이 바로 원인재역 이름의 어원이 된 ‘원인재’ 사당이다.

1990년 11월 9일 인천시 문화재 사료 5호로 지정된 원인재는 과거 인천적십자병원 인근 신지마을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수 택지개발로 인해 1994년 인천 이씨(인주 이씨)의 중시조인 이허겸 묘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시조’란 이름이 별로 없던 성(姓)씨를 가진 집안을 일으켜 세운 선조를 말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의 선조는 신라 때부터 지금의 인천인 ‘소성현’에 살았는데, 신라 사신으로 중국 당나라에 갔다가 천자에게서 성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인천 이씨가 본격적으로 고려시대 귀족 대열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은 이허겸 때부터다. 그의 손녀 3명은 모두 현종의 비(妃)가 되기도 했다. 원성황후인 첫째 손녀는 덕종과 정종 두 왕을, 둘째 손녀는 문종을 낳았다. 이후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기까지 7대에 걸쳐 귀족정치의 막강한 파벌을 이룬 집안이다.

이 사당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기록을 통해 조선 순조 7년(1807년)이나 고종 4년(1835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자리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된 원인재는 기와지붕 중 가장 아름다운 구성미를 지닌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내구성은 물론 한옥의 아름다움까지 살리고 있다.

이허겸 묘 역시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까치섬’이라고 불리는 곳에 자리해 풍수지리설로 볼 때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의 굉장한 명당이라는 게 구의 설명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고려시대 인천 이씨가 흥했던 이유가 이 덕분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

구 관계자는 "시 지정 문화재 사료의 경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 중 보존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것"이라며 "현재 자리로 복원해 옮긴 이후 구체적인 활용 방안 등은 아직 계획돼 있지 않지만 인천 이씨의 역사와 관련되는 등 의미가 있는 만큼 원인재의 보존 등에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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