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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전오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사람들이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 야생동물들이 사람에게 의존하게 돼 자연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에 먹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자연의 생물은 스스로 먹이를 구하고 자연의 순환성과 자율성에 따라 살아야 함으로 인간의 영향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연구자로서 자연을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결론이라기보다는 교과서와 책을 통해 만들어진 일종의 피상적인 이상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과 인간의 공간을 이분법으로 보면 인간의 정주공간과 그 밖의 공간은 자연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서 나온 초기단계는 인간의 정주공간이라는 것 자체도 자연의 일부였을 것이고 세상은 온통 자연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이후 인간이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면서 그나마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졌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정주영역이 점점 커지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지금의 시대에는 오히려 순수 자연 공간을 찾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지구의 대부분이 인간의 땅이고 인간의 관심이 적은 땅, 개발을 유보한 일부 지역만이 자연의 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인간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여기서 자연과 인간의 공간 구분을 다시 하고자 한다. 인간의 핵심 정주공간, 자연성이 높은 핵심 자연공간, 그리고 중간지대, 이렇게 세 가지 공간이 있다고 공간 개념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간지대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간의 영향과 노동력이 투입되는 곳, 그리고 자연의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 중간지대이다. 이 중간지대는 인간의 영향과 노동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공간이다. 이 공간의 크기가 인간 정주공간이나 순수 자연공간보다 크다고 생각된다.

 대표적인 중간지대가 논, 밭, 과수원 등 농업공간이다. 우리가 어릴 때 모심기가 끝난 논에서 여름 내내 울어대던 개구리 무리나 개구리를 잡아먹는 백로 무리, 어른들의 몸 보신용으로 잡아내었던 미꾸라지 등은 이러한 논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삶의 영토를 넓혀왔다. 산자락에 있는 밭과 과수원에서 농부들이 먹거리를 구하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수많은 열매들은 야생동물들의 겨우내 양식이 됐다. 인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중간지대도 따라 커졌고 자연의 영역은 감소했다. 중간지대는 인간의 영향과 인간의 의도하지 않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의 보금자리가 됐다. 즉, 지금 단계에서 인간의 영향을 일순간에 끊는다면 이곳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어찌보면 중간지대 생명들은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 중간지대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중간지대를 넓히기도 하였지만 정밀한 농업기계를 개발해 중간지대의 수확물을 인간이 독차지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가을이면 논마다 둥글고 하얀 비닐로 싼 볏짚더미가 쌓이는데 과거 낫으로 추수해 볏짚단을 처리할 때에 비해 완벽에 가깝게 볏짚과 낱알을 논에서 분리하고 있다. 즉, 추수가 끝난 논을 찾는 겨울 철새들은 더 이상 논에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게 됐다. 제초제와 살충제와 같은 농약 사용은 어떠한가? 이들 농약을 뿌리면 풀만 죽고 해충만 죽는 것이 아니다. 논에 사는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사라진다. 논에는 인간이 선호하고 선택한 벼 외엔 생명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인간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중간지대, 그곳을 기대어 살아왔던 수많은 생명들의 공존공간이었던 중간지대가 승자독식, 인간만을 위한 땅으로 변하고 있다. 나는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도시에는 먹을 거리가 넘쳐난다. 맛이 없어 먹지 않거나 시들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아 상품가치가 없다며 버려지거나 먹다가 남기거나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요리과정에서 폐기되거나….

 추운 겨울을 나는 야생 동물들에게 도시가 소비하지 못하는 먹거리 일부를 나누자는 것이 자연의 순환성과 자립성을 침해하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자격이 중간지대를 독차지한 우리에게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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