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도포대지(왼쪽)와 옛 소래철도의 모습.   <인천시 남동구 제공>
▲ 장도포대지(왼쪽)와 옛 소래철도의 모습. <인천시 남동구 제공>
인천의 대표적 수산물 시장인 소래포구 인근에는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포대가 설치돼 있다. 조선시대 고종 16년(1879년)에 만들어진 장도포대다. 2001년 시 문화재자료 19호로 지정됐다.

개화기 서구 열강의 침입과 인천 개항에 대비해 인천과 부평연안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설치된 장도포대는 화도진과 연희진 등 2개의 진과 묘도·북성·제물·호구포대와 함께 축조돼 화도진 관할 아래 있었다. 장도포대는 소래포구를 가로지르는 소래철교 옆 40m 높이의 구릉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구릉은 모양이 노루처럼 생겼다 해서 ‘장도(獐島)’, 노루목 또는 노렴이라고 불렸다. 이후 포대가 설치된 이후부터 ‘대완구’에서 ‘댕구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남동구는 2006년 전까지 터만 있었던 포대지를 복원했다. ‘화도진도’의 원본 확인 결과 이곳에 포좌 3기가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장도포대지의 바로 옆에 놓인 옛 수인선 소래철교도 남동구가 빼놓을 수 없는 현대문화유산이다. 1937년 8월 6일 정식 운행에 들어간 수인선은 총연장 52㎞, 선로 너비 762㎜의 협궤선이다. 17개의 정차장과 임시정류장이 설치돼 인천∼수원을 1시간 40분으로 연결했다.

초창기부터 ‘꼬마열차’라는 애칭으로 불린 수인선은 소래와 남동, 군자 등지에서 생산한 소금을 인천으로 실어 날랐다. 또한 경기 각지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송하기 위해 이미 건설됐던 수려선(수원∼여주 간 73.4㎞)을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등 식민지 경제 침탈을 수행하는 데 목적을 뒀던 노선이다.

그러나 산업구조 개편과 도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쇠퇴일로를 걷게 됐고, 1973년 남인천∼송도 구간 5㎞가 시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됐다. 1990년대 들어서 인천∼수원 간 왕복 운행이 3회로 축소됐다가 1994년 송도∼한양대 앞 간 26.9㎞ 폐지, 1995년 12월 한양대 앞∼수원 간 20.2㎞도 운행이 중단되면서 58년 4개월 만에 긴 여정을 마감했다.

1999년에는 소래철교 정밀안전진단 결과 시설물 노후에 따른 교대 및 교각의 침식과 철근 노출로 심한 균열이 발생하면서 붕괴 위험이 우려돼 재난위험시설 D급 폐쇄조치 판정을 받았다.

남동구는 지역의 현대문화유산인 소래철교를 보존하기 위해 예산을 들여 보수 작업을 진행, 지금은 시민들이 안심하고 통행할 수 있다. 소래철교는 단순한 현대문화유산이 아닌, 시민들의 추억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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