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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장묘문화 개선할 수 없을까?

안홍옥 행정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9월 28일 목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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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홍옥 행정사

유럽 여행을 갔을 때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갔을 때 드넓은 초원과 광활한 평야가 부러웠다. 그 넓은 국토에 우리나라 아무데서 흔히 볼 수 있는 묘지가 없는 것이 더 많이 부러웠다.

 요즘 추석을 앞두고 전국에서 묘지의 벌초를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될 것이고 교통 혼잡과 에너지 낭비, 잡초 제거를 위해 많은 농약을 사용하니 토양 오염이 크게 우려된다. 앞으로 20여 년 후 지금 60대인 우리가 죽을 때에는 사망자가 지금의 3배가량으로 묘지난이나 장례식장 등 장례시설과 화장장 어쩌면 납골당이나 수목장도 모자랄 것이라는 통계다.

 현재 관리되고 있는 전국의 묘지 중 오래됐거나 무연고 묘지는 하루빨리 정리해 나무를 심고 앞으로 생겨나는 묘지를 억제해야 한다. 이제 국민의식이 변해 대체로 화장을 하고 가족묘를 조성해 납골당을 만들어 유골을 보관하는 시대가 됐지만 땅속에 돌로 만드는 납골당이 재래식 봉분보다 자연에 더 부담을 준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묘지문화는 중국에서 전해온 유교사상이 뿌리인데 정작 그 원조국인 중국은 법으로 정해 100% 화장을 하고 있고 장례문화도 우리보다 훨씬 간결하다고 한다. 그것은 중국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등소평(덩샤오핑) 부부와 5남매는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자신들의 사후 장례절차를 간소하게 할 것을 유언으로 남겨 솔선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주은래(저우언라이) 지도자 부부도 "화장 후 조국 산하에 뿌려 달라" 는 유언대로 실천했다고 한다. 2001년부터 시행에 들어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잘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법률은 매장 60년 후 납골 화장을 의무화하고 묘지면적 상한선도 과거의 ⅓로 축소했지만 2001년 이전에 설치한 분묘는 해당이 안 돼 전국의 국토 1% 이상이 묘지라고 한다. 앞으로는 그보다 더 강화해 아예 개인묘지는 금지하는 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땅덩어리가 광활한 미국에도 개인묘지는 없고 집단(공원) 묘지에서도 1기당 3.3㎡ 미만이고 묘지 간 간격도 20㎝ 미만이라고 한다. 스위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는 1990년대부터 수목장이 시작돼 지금은 보편화됐고 영국에서는 유골 위에 장미꽃을 심는 장미묘원이 인기라고 한다. 선진국 대부분은 공원묘지가 주거지 가까운데 위치하고 있어 유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화려하게 만들어 결혼식장으로도 함께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승화장이나 추모공원을 기피시설로 생각해 시내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극렬 반대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우리 삶의 중심에 죽음이 함께 해야 한다. 죽음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 아니고 곧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선진의식을 가지고 합리적인 장례문화를 실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게 경기 양평에 있는 소망교회 묘지다. 교회 앞마당에 ‘소망교회 성도의 묘’ 라는 비석이 서 있고 비석 주변에 자갈을 깔아 그곳에 화장한 골분을 뿌리게 돼 있다. 묘역은 29.4㎡ 불과하지만 1995년 2월 묘지를 만든 이래 2천여 명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33㎡도 안 되는 묘역이 수천 명 신도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으니 수목장보다 훨씬 앞서간 방식이다.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수많은 신도들의 예배와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아 고인들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죽은 자와 산자들이 가까이서 교감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제 요란한 장례와 호화 묘지를 가문의 융성과 효도의 상징으로 여기는 인식은 사라지고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장례로 변하고, 앞으로는 아예 묘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인도의 영웅 네루, 중국의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 아인슈타인, 엥겔스 등이 모두 유언에 따라 화장해 강이나 바다에 뿌려져 묘지가 없고 독일의 영웅 드골 대통령은 자신보다 먼저 간 딸이 묻혀있는 시골 공동묘지에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공동묘역의 딸의 묘 옆에 묻혔다고 한다. 나는 월남파병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을 정말로 존경한다. 모두 호화묘역과 큰 묘역에 가고 싶어 안달인데 장군묘역에 묻히는 것이 보장됐지만 사병과 구분하면 안 된다며 사병 묘역에 묻힌 그분을 이순신, 세종대왕 못지않게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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